[558호 2024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경제 번영을 위한 강대국 전략
손인주 (동양사91-98) 모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논 단
경제 번영을 위한 강대국 전략
손인주 (동양사91-98)
모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리더십
세계와 성장하는 개방성 갖춰야
언제든 출발은 관점에서부터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국가 미래 전략의 시작이다. 한국은 세계의 중심으로 시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주변국이라는 인식에 갇혀 있었던 조선왕조 시대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더 이상 동아시아의 변방 중견국이 아니다. 지난 20여 년간 급격히 상승한 한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새로운 국가 정체성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반외세 민족주의, 초강대국 편승 전략 등 기존 서사(narrative)가 만든 좁은 선택지와 그로 인한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통일 신라와 고려 시기의 활발한 해상 무역과 같은 조선왕조 이전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 개항 이후 150년 동안 한국이 겪은 근현대사의 고투와 발전을 설명할 새로운 역사적 서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조선 시대의 배외주의(排外主義)와는 달리, 신라 및 고려 시대 700년 동안의 개방적 대외 정책의 전통을 재조명하려는 문제의식은 이미 일제 시기 안재홍(安在鴻), 김상기(金庠基)와 같은 국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21세기 한국은 폐쇄적인 민족주의 국가가 아닌 개방적 네트워크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근대 강대국의 사례를 보면,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국가 정체성으로 삼을 경우 외부 세계를 적대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와 민족의 영광 혹은 치욕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세계와 전쟁과 갈등을 벌이는 것은 국력을 스스로 소모시키고 국민에게 고통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개방적 네트워크 국가는 교역을 통해 국민 개인의 경제적, 문화적 번영의 기회를 확대하며, 이러한 번영을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공유한다.
근대 국가 건설과 산업화, 민주화를 이룩한 후, 한국은 이제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하지만 한국이 나아가야 할 국가 대전략을 제시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경제 번영을 위한 강대국 전략’이라는 정책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초일류 개방적 네트워크 강대국을 지향하며 ‘다중 바큇살’ 전략을 제안한다. 세계적인 기술 기업들이 한국에서 혁신적 산업을 발전시키고, 전 세계 생산 기지를 통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혁신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첨단 기술 인력의 유목민화’, ‘지방정부 주도의 지역 혁신 거점화’와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을 기획, 연구개발, 디자인 등의 헤드쿼터로 발전시키고, 이를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아프리카, 동유럽 등 7개의 생산 허브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4개 지역을 물류망을 통해 바큇살처럼 연결하자는 ‘7허브 플러스 4’ 구상이다. 다중 바큇살 전략은 한국이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을 넘어 글로벌 경제 혁신의 허브로 자리 잡기 위한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주요 글로벌 허브 국가들과 포괄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하고, 생산지대를 공동으로 개발하여 경제적 번영을 공유해야 한다.
또한, 글로벌 혁신 및 생산 네트워크를 한국 중심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안보 리스크를 최소화할 전략이 필요하다. 안보 위협으로 인해 해상 물류가 차질을 빚을 경우, 한국 경제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적 차원에서는 한미 동맹의 역할 확대를, 다자적 차원에서는 한국이 주도하는 해양 안보 협력체의 설립을 제안한다. 이는 한국의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해양 안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해군의 접근을 지원할 수 있는 정찰, 호위 등 방어적 군사 지원 체계를 마련하며 한국의 조선 산업 역량을 활용해 함정 건조와 수리 지원 정책을 추진할 것을 권장한다. 또한, 해상 교통로의 주요 지점에 위치한 국가들과 정기적인 합동 해상 훈련을 통해 잠재적 위협 국가의 해상 통제 시도를 억제할 필요도 있다.
반도 국가는 강력한 정치 세력들의 경쟁에 휘말려 소멸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반면 외부로 확장하기에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 마키아벨리는 ‘고대 로마는 끊임없이 확장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세계 중심국으로 부상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면, 쇠퇴와 소멸의 길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정치적 리더십이다. 이 리더십에는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한국의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글로벌한 관점과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