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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호 2023년 1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전간기(戰間期)의 교훈을 통해 보는 오늘의 세계

박태균 국사85-89 모교 국제대학원 교수
관악논단
 
전간기(戰間期)의 교훈을 통해 보는 오늘의 세계



박태균
국사85-89
모교 국제대학원 교수

팬데믹 후 세계 곳곳서 국지 전쟁
1, 2차 세계대전 사이 상황과 흡사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스라엘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했다. 전선과 후방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엄청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정전이나 휴전을 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나 이스라엘이 주변국으로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중국과 북한, 이스라엘 전쟁에는 미국과 중동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까? 현재의 상황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전간기(戰間期)로 불리는 1920년대, 1930년대와 유사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기다. 일반인들은 두 차례의 큰 전쟁만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로 전간기에도 큰 규모의 국지전들이 일어났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만주침략(1931년)과 중일전쟁(1937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에티오피아 침략(1935년), 독일 나치의 대프랑스 국경불가침조약 파기(1936년)와 라인란트 및 오스트리아 병합(1938년)이 그것이다. 이러한 침략 행위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 자기들만의 동맹을 만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발발했다. 

전간기에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첫째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무모했던 진지전으로 인해 승자와 패자 모두 엄청난 인적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에 대한 반성, 그리고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국제적 장치가 전혀 마련되지 못했다. 전범재판도 없었다. 패배한 국가에 대한 보상금 부과와 함께 국제연맹을 설치했지만, 독일은 전쟁의 책임이 자신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반발했고, 국제연맹은 세계적인 무력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침략자들은 탈퇴하면 그만이었다. 

둘째로 전쟁에 더해 스페인 독감이라는 팬데믹 이후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스페인 독감은 중세의 흑사병 이후 650년 만에 맞는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 심리였다고 할까? 1920년대 미국은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포디즘으로 대표되는 대량생산체제를 마련했고, 주식 시장은 최고의 활황을 지속했다. 그러나 10년을 가지 못하고 1929년 대공황을 맞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파시스트, 나치, 군국주의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셋째로 극단적 정치의 발흥이었다. 한쪽에서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극단적 좌익이 등장했다. 스탈린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유럽과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와 노동조합 운동이 고조되었다. 극좌의 등장은 극우의 등장을 가져왔다. 적대적 공조다. 이 과정에서 극우 파시스트들은 극단적 포퓰리즘을 통해 자유주의자들을 내쫓고 스스로 정권을 잡았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통치능력이 없었던 극우 파시스트들은 해외 침략으로 눈을 돌림으로써 사회 전체를 비정상적 상황으로 만들었다. 

넷째로 국제사회가 극단적 파시스트 국가들의 침략에 대해 안이하게 대처했다. 당시 최강국이었던 영국과 미국은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이들의 침략전쟁과 세력확대가 급기야 진주만과 프랑스 침공으로 연결될 거라고 판단하지 못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 함대의 몰락, 1920년대 열린 몇 차례의 군축회의로 더 이상 큰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독일이 서진을 하지 않고 동진만 한다면, 소비에트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희망까지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현재의 상황은 전간기의 네 가지 특징과 매우 유사하다. 실질적 전쟁은 아니었지만,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었던 냉전이 1990년을 전후해 끝났다. 그러나 인류는 냉전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열전(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핵무기의 위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탈냉전 이후 오히려 열전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의 아프리카와 유고슬라비아에서 발생한 인종청소에 이어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하여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2008년 경제위기가 왔고, 그 위기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 현실화되고 있다. 2010년대를 통해 위기가 극복된 것으로 보였지만, 팬데믹과 AI의 등장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극단주의로 인한 사회 양극화는 비단 한국사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역시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을 적극적으로 멈추려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제2차 냉전으로의 진행을 예상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처럼 정치, 경제, 안보적으로 국제사회에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 국가는 특히 국제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다행히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극단적 공산주의자도 없고, 극우 파시스트들도 없다. 그러나 극단적인 사회 분열과 갈등이 계속될 경우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안이해서는 안 된다. 100여 년 전 전간기의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는 차선을 찾을 것이 아니라 최선을 찾을 수 있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