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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호 2023년 12월] 뉴스 기획

뇌과학·미디어·로봇…세계가 주목한 연구자

2023년 서울대를 빛낸 연구

 

뇌과학·미디어·로봇…세계가 주목한 연구자

지난 11월 모교는 탁월한 연구 업적을 보인 10명의 모교 교수에게 학술연구교육상 연구부문을 시상했다. 모두가 유망한 연구지만, 특히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뇌과학·미디어 심리학·로봇 분야에서 각각 성과를 이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세 명의 연구자를 본지에서 인터뷰했다. 이들 3명 외 수상자 7명은 다음과 같다. 권용태(동물80-84) 의과학과 교수, 김동일(교육83-87) 교육학과 교수, 김창영(물리84-88) 물리천문학부 교수, 조제열(수의학85-89) 수의학과 교수, 윤석화(경영88-92) 경영학과 교수, 김태균(사회91-98)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 장호원(포항공대99졸) 재료공학부 교수. 박수진 기자


경쟁심 유발·불안 조절 ‘신경교세포’의 재발견



이성중 (미생물87-92) 모교 치의학대학원 교수


길다란 원통 모양 튜브 양끝에 한 마리씩 쥐를 놓는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처럼, 튜브 중간에서 만난 쥐들은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어떤 쥐는 밀고 버티며 튜브를 차지하지만, 어떤 쥐는 끝내 밀려난다. 경쟁을 통해 쥐의 ‘서열’이 확인되는 이 튜브 테스트 장면은 인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에서 이기는 쥐는 뭐가 다를까. 신경생물학자인 이성중 교수는 뇌의 신경교세포에서 답을 찾았다. 이 교수 연구팀은 8월 “생쥐가 다른 생쥐들과 경쟁할 때 뇌 전전두엽 영역에서 신경교세포의 일종인 성상교세포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어떻게 이런 연구를 하게 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경쟁심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전전두엽에서 신경교세포의 기능에 대한 의문이 먼저였다”고 했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우월행동에 전전두엽의 신경세포(뉴런)이 관여함은 10여 년 전에 보고된 사실. 그러나 이번 연구로 경쟁심 같은 고위 뇌 기능이 신경세포가 아닌 ‘신경교세포’에 의해 조절됨이 처음 밝혀졌다. 뇌세포라고 하면 뇌에서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만 떠올리지만, 사실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신경교세포다. 신경세포와 상호작용하며 시냅스의 가소성을 조절하고, 신경계 내 면역·염증반응을 조절하는 기능도 있지만 뉴런을 보조하는 역할로 인지되며 신경과학 연구에선 오랜 시간 ‘조연’에 불과했다.

이 교수도 처음엔 미국 앨라배마대에서 신경면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구강·안면 등의 신경병성 통증에 신경교세포가 관여함을 밝혀냈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중추신경계의 60~90%를 차지하고 뉴런보다 10배나 많은데, 더 많은 기능이 있지 않을까?” 뇌 영역별로 신경교세포의 다채로운 기능을 밝히는 연구를 시작한 계기다.

첫 성과로 해마 영역에서 성상교세포의 불안 조절 기능을 발견해 작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다. 다음엔 생쥐의 전전두엽에서 성상교세포의 활동성을 실시간 모니터링했다. 사회적 서열이 높은, 즉 경쟁 끝에 튜브를 차지한 생쥐는 성상교세포 활동성이 더 컸다. 심지어 해당 성상교세포의 활동성을 증가시키고 억제함에 따라 정해진 서열이 역전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성상교세포 하나가 몇십만 개의 시냅스를 감싸면서 마치 두 사람의 말을 중간에서 전해주듯 신호의 중요도를 파악해 양쪽 뉴런에 보내준다”고 했는데, 이 경우 성상교세포가 주변 신경세포의 흥분성과 억제성 시냅스 신호 균형을 조절함으로써 경쟁심과 우월행동에 관여했다는 분석이다. 경쟁에 승리한 생쥐들이 사실은 “잘 밀어서가 아니라, 상대가 밀 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잘 버텼기 때문에 이기더라”는 연구진의 관찰은 흥미롭다. 성상교세포를 자극한 2등 쥐에게 거듭 패배를 경험한 1등 쥐는 우울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인간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신경교세포는 이제 뇌 기능에서 단순 조연이 아닌 ‘공동 주연’으로 올라섰다. 이미 파킨슨,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뇌질환은 물론 자폐증·우울증·조현병 등에서 핵심 역할이 밝혀져 구체적인 기전을 파악하는 단계다. 그의 실험실에서도 전전두엽 영역 신경교세포가 우울증에 관여한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향후 신경교세포를 타깃으로 한 치료약이 개발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신경교세포의 어떤 무궁무진한 기능이 밝혀질지 궁금하다”며 계속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튜브 테스트'를 통해 경쟁 중인 생쥐의 전전두엽 영역에서 성상교세포 활동을 관찰한 실험 장면. 사진=이성중 교수 


기사 댓글이 여론 지각 결정 확인


이은주 (신문90-94) 모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페이스북, 트위터, 온라인 뉴스 댓글과 쇼핑몰 상품평…. 이은주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이은주 교수는 미디어 심리학자이자,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 및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 연구자다. SSCI 논문만 56편을 발표했다. SSCI는 사회과학 분야의 SCI급 학술지를 가리키는 만큼 심사가 까다롭다. 이 교수는 이중 단독으로, 또는 제1저자로 쓴 18편을 비롯해 총 22편을 커뮤니케이션 분야 톱3 저널에 게재했다. 비영어권 학자 최초로 ‘휴먼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2019년 언론정보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단체인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 종신석학회원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 회장에 취임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근간이 되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이면을 살핀다. 어떤 인지적·심리적 매커니즘이 작용해 참여자들의 지식과 신념, 태도,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 탐구한다. 그리고 ‘왜’ 특정 효과가 발생하는지 이론적 설명을 제시하려 한다.

이 교수가 했던 한 실험은 온라인 저널리즘 시대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똑같은 내용의 포털 사이트 기사를 △댓글이 없는 원본 기사 △댓글 없이 비추천 횟수만 높은 기사 △기사 내용에 반대되는 댓글들이 달린 기사의 3가지 유형으로 피험자에게 보여줬다. 그 결과 비추천이 많다고 해서 여론이 기사 내용에 반대하는 것으로 지각하진 않았으나, 기사 내용과 반대되는 댓글은 여론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다만 댓글이 본인의 의견에 미치는 영향은 인지 욕구가 낮은 사람들에게서만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언론이 여론의 향배를 정했다면, 이젠 댓글이 분석적 사고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커뮤니케이션학의 고전 이론인 ‘침묵의 나선 이론’을 인용, “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해서 소수라고 생각하는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표현되지 않은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 의견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에 반대를 표현하고, 적극적인 연대와 지지 표현 등으로 이를 교정하려는 시민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혐오 발언은 다른 사회구성원에 대한 신뢰를 뜻하는 사회자본을 붕괴시키지만, 사회자본이 두터워야 공동체가 지속,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혐오의 시대에 함의하는 바가 커서일까. 이 교수의 ‘뉴스 댓글 연구’는 커뮤니케이션 분야 3대 국제학술지인 ‘커뮤니케이션 리서치’와 ‘휴먼 커뮤니케이션 리서치’ 등에 게재돼 각각 수백 회 인용됐다.

최근엔 허위조작정보(가짜 뉴스) 연구와 AI 기반 저널리즘 연구를 진행 중이다. 어떤 사람들이 허위정보에 취약한지,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어떤 요인이 사람들을 취약하게 만드는지 검증하고 있다. 또 ‘사람들은 AI가 작성한 기사를 더 믿을 만하다고 평가하는지’, ‘AI가 팩트체크한 기사는 사람들의 확증편향을 완화시킬 수 있는지’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소통의 다양한 형태를 탐구해 왔지만, 목적은 한결 같았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현상 기저의 과정을 밝혀내고, 타당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전적 이론과 개념들을 동원하고, 커뮤니케이션학 하위 학문들의 구획을 넘나드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드론 접목 거대 로봇팔, 공중작업 척척


이동준 (카이스트95졸) 모교 기계공학부 교수


가늘고 가벼운 골격의 로봇 팔이 공중에서 모양을 바꾸며 밸브를 잠그고 물건도 옮긴다. 이동준 교수가 개발한 거대 로봇 팔 ‘라스드라(LASDRA)’다. 현재 7m까지 늘어나는데, 가반하중(운반·이동이 가능한 무게) 2~3kg을 너끈히 버틴다. 비결은 드론이다. 모터나 유압으로 힘을 얻는 로봇 팔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그를 지탱하기 위해 무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세계 최초로 로봇 팔에 드론의 로터 기술을 적용해 이를 극복했다.

이 교수는 미네소타대 박사 졸업 후 동역학 해석과 제어 기술을 적용한 로봇을 연구해왔다. 처음엔 드론 자체를 다양하게 설계해 공중작업을 시도했다. 서랍을 열거나 물건을 밀어내는 작업을 곧잘 해냈지만, “배터리와 모터 기술의 큰 혁신 없인 제대로 된 공중작업이 요원하겠다”고 판단했다. “로봇을 날려서 작업하기보다, 로봇 자체를 크게 만들어 공중작업을 해보자는 발상의 전환”의 산물이 라스드라. 1m짜리 막대 링크 양쪽에 드론을 달고 관절처럼 쭉 이었다.

참고문헌도 없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드론 기반이라 가벼우면서 자유도(로봇 동작의 자연스러움)도 커야 하는 조건을 동시에 맞추는 게 제일 어려웠고, 전선이 길어지면서 전압이 떨어져 제어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여러 시도 끝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면서 매우 길게 늘릴 수 있고, 자유도도 높은 로봇이 나왔다. 현재 링크 7개 기준 14자유도까지 구현되는데, 보통의 산업용 로봇(6~7자유도) 두 배 가량이다. 발전소나 공장 등 실내 환경은 물론 바람이 잔잔한 날엔 야외 작업도 가능하다. IEEE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로봇학회 ICRA에서 두 차례 발표했고, “현재 라스드라 두세 개를 함께 쓰는 양팔·다중팔 작업, 정유공장처럼 파이프가 많은 공간 속에서 밸브 잠그기 등 실제 같은 작업을 구현하고 있다”고 했다.


 
드론의 로터 기술을 적용한 거대 로봇 팔 ‘라스드라’. 사진=이동준 교수 


원격 로봇 조작 기술, 메타버스 핵심기술인 손동작 트래킹 분야도 연구의 한 축이다. 이 교수 연구실에서 개발한 손동작 추적 기술 ‘VIST’가 탑재된 햅틱 글로브를 지난해 CES에 선보였고, 기업들에 기술이전을 하기도 했다. 기존의 손동작 추적 기술은 카메라나 관성센서와 지자기센서를 사용해 사람의 손동작을 추적했다. 그러나 카메라 시야가 가려지거나, 집는 물체가 드릴이나 스마트폰 같은 경우 전류가 흘러 자기장이 왜곡되는 문제가 있었다. VIST는 자기센서 대신 카메라를 관성센서와 함께 사용해 해당 문제를 해결했다.

VIST 기술이 적용된 장갑을 끼면 현실의 다채롭고 정교한 손동작이 가상현실에서 그대로 구현된다. 달걀을 집어 굴리거나, 구멍 모양에 맞춰 물건을 집어넣는 일도 할 수 있다. 그는 “메타(Meta)사의 VR기기 ‘퀘스트’에서 불가능한, 양손으로 깍지를 끼거나 하는 동작도 VIST에선 가능하다. 빠른 손동작을 추적하는 우리 연구가 진전되면 메타버스 안에서 커브볼도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과 가상현실, 스마트공장, 재활 등의 분야에서 상용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 제품 대비 가볍고 저렴하며 정확도도 높다.

고도의 손동작 추적 기술은 실제세계와 똑같은 ‘차세대 메타버스’ 시대를 여는 열쇠와 같다. 그는 “우리 실제 세계와 상호작용을 흥미진진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손과 손가락의 사용”이라며 “이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한다면 실제 세계를 통합하는 진정한 메타버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이동준 교수 연구실 'InRoL(인터랙티브 네트워크 로보틱스 연구실)'의 연구 성과 보기: https://www.youtube.com/@snuinrol5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