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41호 2023년 4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양당에 필요한 온건파 소통 공간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관악논단
 
양당에 필요한 온건파 소통 공간 



손병권
외교82-86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의회로 대변되는 대의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이는 의회가 국민의 뜻을 적절히 살펴 협의를 통해 법률이라는 공공재를 제때 제시하지 못할 때,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각종 도전이 몰려든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정쟁으로 인해 의회가 빈번한 교착상태에 빠지고 그로 인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제도권 정치를 폄훼하는 선동적 구호와 장외운동이 정치를 대신하게 된다. 이때 국민의 실망과 좌절감에 편승한 포퓰리즘 세력이 ‘안전’과 ‘빵’을 무기로 민주적 제도를 망가뜨리면서 득세하게 된다. 

한국 대의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국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광장의 정치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고, 제도권 정치는 국회 밖 진영논리의 볼모가 되어 버렸다. 집회, 시위, 운동 등 진영 대결이 극단화되자 제도권 정치는 장외정치에 포획되었고, 국회는 국회 안팎의 갈등 속에 표류하면서 타협과 설득의 민주주의는 점점 더 회복력을 잃어 가게 되었다. 

그런데 실은 이러한 현상은 국회를 무기력하게 만든 원인이라기보다는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수준은 어떤가? 2019년 리얼미터가 대통령, 시민단체, 언론, 노조 등의 기관을 대상으로 수행한 국가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 의하면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2.4%로 나타나 경찰(2.2%)과 함께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또한 금년 3월 국세청이 발표한 2022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중앙정부, 법원, 검찰, 군대 등을 포함한 7개 기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는 2013년 이래 10년째 계속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24.1%)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제력 없으면 민주주의 붕괴
정당 내 소수 목소리 존중을


이런 불신 속에서 여의도의 대의정치가 살아나려면 국회는 적극적으로 자체 혁신을 도모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온전한 대의정치의 회복까지 아직은 갈 길이 멀어만 보인다. 지연 통과된 반도체법, 외교까지 확장되는 정파적 대립, 난무하는 탄핵론, 폭로와 반박의 공방으로 점철된 상임위원회 운영과 본회의 대정부질문 등 우리 국회의 난맥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얻고 대의정치의 정상궤도로 나가야 하는데,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선거제도의 개혁이나 권력구조의 변경 등 복잡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현재 상황에서 정당과 정치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면서 몇 가지 제안을 적어 보겠다.

무엇보다도 우리 대의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 내에서 상대 정당을 정당한 정치적 경쟁자로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보수, 진보정당이 서로 경쟁하듯이 종북세력, 토착왜구로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이상, 국회가 국민의 온전한 의사를 대변할 수는 없다. 제거의 대상으로 상대 정당을 본다면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도 없어져야 할 대상이란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여야는 경쟁 속의 공존의식을 배양해야 한다.

둘째, 보수나 진보정당을 막론하고 정당 내부의 다양성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당내 소수 세력의 목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이는 소선구제라는 선거제도로 인해 거대 정당간 대립을 조정할 수 있는 제3당의 등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양대 정당 간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각 정당 내부에서 소위 ‘쓴소리’를 하는 온건 비주류 세력의 목소리가 존중될 때, 각 정당은 당내 극단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나름대로 대화와 타협을 위한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당내 온건파들이 거대 양당 간 소통의 핵(core)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야 모두 국회 입법절차상의 문제는 국회 내에서 처리한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일종의 신사협정도 절실해 보인다. 여야가 입법절차상의 분쟁을 헌법재판소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것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의 저자들이 강조한 ‘제도적 자제력’이 사라지는 조짐이자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 징후이다. 무엇보다 자제의 규범을 되새기며 국회가 스스로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존중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여야지도부로 구성된 국회 운영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절차적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국회 내부에서 이를 해결해 내려는 국회의장의 결의와 강단이 필요하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대의정치의 구현체로 다시 살아나기 위해 우리 국회는 제도개혁만큼이나 자기성찰을 통한 태도 변화를 위해서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