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호 2025년 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시민 정치 참여, 광장 넘어 삶 속으로
김주형 (정치96-03) 모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시민 정치 참여, 광장 넘어 삶 속으로
김주형 (정치96-03)
모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계엄 저지·탄핵 이끈 ‘촛불 정신’
제도권 정치·교육으로 이어져야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대통령 탄핵과 수사를 바삐 거쳐 가는 일련의 과정은 우리 정치공동체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지금은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수사에 이목이 쏠리고 있지만, 붕괴 직전까지 다다른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으로 곧 확장될 것이다. 이미 정부형태 문제를 중심으로 개헌 관련 논의가 시작되었고, 삼권분립의 세부사항과 선거제도 등도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법과 제도의 차원으로 논의의 초점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긴요하다. 하지만 우리 정치체에 가해진 이 거대한 충격이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의 지형을 더 넓히는 대신에, 법과 절차의 정상성 회복이라는 화급한 목표로 오히려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는 법과 절차의 정상성을 회복하는 것이 맞다. 대통령과 다수 고위 공직자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 명백해 보이는 상황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조사와 심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래서 과연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미뤄서는 안 된다. 이것은 2016~2017년의 위기와 그 극복 과정에 대한 성찰이 넓게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파면되고 선거가 치러지고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꽤나 빠른 속도로 헌정질서의 정상성을 회복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체질이 더 건강해졌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때부터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담론이 더 확산하였다. 이 위기 담론의 타당성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렵게 회복한 정상성의 실제가 왜 이렇게 실망스러운 것이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방금 ‘체질’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것은 우리가 통상 ‘헌법’이라고 번역하는 영어 단어 constitution의 다른 뜻이기도 하다. Constitution은 한 국가의 정치가 구성되고 작용하는 원칙을 규정하는 문서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의 ‘체질’, 즉 제도와 행위자들을 이끄는 규범과 습관의 총체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constitution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인 수호와 회복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논쟁과 불화의 대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2016~2017년의 상황을 잠깐 복기해보자. 당시 촛불시위의 양상은 이번 응원봉 시위와 꽤 다른 점이 여럿 있지만, 다양한 행위자들이 각자가 경험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분출하는 공간이었다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박근혜 파면’이라는 기표의 압도적인 힘과 시급성이 행사하는 영향은 양가적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구호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주장과 주체 사이의 접합을 끌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체질에 대한 넓은 고민을 부차화하는 힘으로 작동했다. 예를 들어 노동, 젠더, 장애 등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 제기는 이내 공론장을 잠식한 전략적 고려와 선거경쟁 속에서 끝내 넓게 의제화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당시 촛불의 의미는 이런 것들이 아니라 탄핵과 정권교체에 한정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1987년의 의미가 ‘직선제 개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 민주주의의 체질에 대해 말하려면 정치제도의 작동과 정치인들의 행태를 포함해 여러 층위에 대해 말해야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시민과 시민성의 문제에 관한 토론도 필요하다. 계엄이 실질적으로 집행되는 상황을 저지하고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이끈 것이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입이었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연대와 비폭력이라는 한국형 집합행동의 독특한 양상은 국내외 관찰자들의 찬사를 끌어냈다. 그렇다면 헌법과 법률의 정상성이 회복된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시민성은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언제부터인가 정치학자들의 분석에서도 정치참여가 곧 광장에서의 직접행동이나 온라인 공간에서 분출되는 분노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시민들의 직접행동은 한국 민주주의의 매우 소중한 동력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헌정이 무너질 정도의 위기가 되어서야 ‘소화기’처럼 등장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 주체의 유일한 형상일 수는 없다. 시민들의 참여가 ‘청소기’나 ‘대타’의 역할에 국한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되풀이될 경우, 대규모 동원이나 극적 효과와는 거리가 먼 지리멸렬한 과정으로서 일상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오히려 부추길 수도 있다. 우리의 시민교육과 정치참여가 삶의 현장에 더 가깝고 깊이 머무를 방안에 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더 넓고 깊은 참여가 대의제 정치과정과 때로는 긴장하면서도 더 큰 맥락에서 협력적일 수 있는 방안은 많다.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이러한 노력은 민주주의 특유의 활력과 회복력을 살리는 유일한 경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