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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호 2021년 4월] 뉴스 기획

115명 중 무려 69명…국문과 대학원생 절반이 외국인

국문학 전공 외국인학생 인터뷰

국문학 전공 외국인 학생들이 본지와 인터뷰했다. 왼쪽부터 석사 과정 중국인 황성진, 박사 과정 인도네시아인 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타라니, 터키인 에즈기 젱기제르.


115명 중 무려 69명…국문과 대학원생 절반이 외국인

국문학 전공 외국인학생 인터뷰


서울대 통계연보 최신판에 따르면 2020년 외국인 학생 수는 2,038명으로 재적 학생 3만4,072명 중 6%를 차지했다. 모교 캠퍼스에서 외국인을 목격하는 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지만, 국문학과 대학원으로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번 학기 재적 인원 총 115명 중 69명이 외국인 학생으로 과반을 넘긴 것. 출신 국가도 미국·중국·영국·대만·터키·독일·프랑스·핀란드·스웨덴·라트비아·인도네시아·투르크메니스탄 등 18개국에 달해 강의실에 들어서면 그 풍경은 국제 학교를 방불케 한다.

모교 국문학과의 협조를 구해 외국인 학생들에게 인터뷰이 모집 공고를 올린 결과, 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타라니(Febriani Elfida Trihtarani 이하 페비·인도네시아), 에즈기 젱기제르(Ezgi Cengizer 이하 에즈기·터키), 황성진(Huang Shengzhen 黃盛珍·중국) 씨가 참석 의사를 전해왔다. 4월 2일 인문대 신양학술관 앞에서 만난 이들은 국적도 성별도 취득 학위도 제각각 달랐지만, 한국 문학에 대한 사랑과 이를 바탕으로 본국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겠다는 포부는 똑같았다.

미국 중국 터키 인니 등 18개국
K 드라마 등 한류 열풍 힘입어

뛰어난 서울대생 보며 자괴감
외국인다운 참신한 시각 무기

책으로 먼저 접한 교수님 강의
직접 듣고 배울 수 있어 좋아요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페비) 인도네시아 대학에서 학부 때 한국어를 전공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국어가 되니까 내처 한국 문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다. 김소월의 시를 대상으로 학부 졸업 논문을 쓰기도 했다.

(에즈기) 한류의 영향이 컸다. ‘해신’, ‘대장금’ 등 한국의 역사드라마가 사극을 좋아하는 터키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해 큰 인기를 끌었다. 접근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한 나라인 터키는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없는데, 한국과 한국 문학을 공부하면서 제국주의의 관점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히는 경험을 했다. 더구나 터키는 연합군 중 하나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아시아의 끝과 끝에 위치한 두 나라가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터키와 한국은 똑같이 알타이어권에 속하기도 한다. 한국 문학에 정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황성진)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태어나 자랐지만, 평해 황씨로 한국에 본관을 두고 있다. 때문에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필연적이기도 한데, 학부 땐 인연이 닿지 않아 광고학을 전공했다. 학과 특성상 중국어문학과 출신 교수와 강사가 많아 자연스럽게 중국 문학을 같이 배우기도 했다. 중국 문학을 배우면서 한국 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져 국문학 석사과정에 진학하게 됐다.

-영어나 중국어 혹은 유럽의 언어를 익히는 게 더 실용적이지 않나.
(페비) 자국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한국 사회와 역사를 날것 그대로 공부하는 것보다 문학 작품에 투영된 모습을 찾아 읽으면서 공부하는 게 훨씬 재밌다. 한국현대사의 중요 기점들, 예를 들면 3·1운동, 8·15광복, 6·25전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중요 사건들을 문학 작품을 통해 공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문학은 내게 충분히 실용적이다.

(에즈기) 영어나 유럽의 언어들은 터키어와 어순이 정반대다. 반면 한국어와 터키어는 어순이 같고 비슷한 어휘가 많아 서로 배우기 쉽다. 또한 과학적인 한글의 매력을 무시할 수가 없다. 처음엔 그림 그리듯이, 나중엔 글자의 신비한 법칙을 깨우치며 한글을 익혔다.

-한국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한 명 없는 나라인데.
(황성진) 문학 자체는 좋은 문학, 혹은 우월한 문학이란 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은 한국 역사 속에서 발전돼 왔기 때문에 고유한 장점과 매력을 지닌다. 아쉽게도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까진 배출하지 못했지만, 한국 문학도 최근 글로벌화 되고 있다. 최인훈, 박완서 소설가를 비롯해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해외 여러 언어권에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소설가 한강이 2016년 영국의 맨부커상을 받은 것은 이러한 흐름이 가시화된 예다.

-한국 문학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페비) 한국어엔 형용사가 풍부하고 다채로워 구체적이고 인상 깊은 장면 묘사가 많다. 또한 식민지 시대 한국 문학에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와 닮은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다. 식민지배를 받는 나라의 국민은 식민지배를 하는 나라에 호의적일 수가 없는데, 묘하게도 조선의 상류층은 일본 문화와 풍속에 젖어 드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염상섭의 중편소설 ‘만세전’은 일본으로 유학 간 조선인 주인공이 등장하며, 이유 없이 핍박받는 동족의 모습에 울분을 느끼면서도 조국의 현실을 자조하며 홀로 삭인다. 울분을 느끼고 사회운동에 나선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피식민지 국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한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의 작품 ‘인간의 대지’ 속 주인공과 닮았다. 한국 문학에서 발견되는 인도네시아적 감성이 흥미롭다. 이러한 공통점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으며 그중 일부를 2019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 발표한 적도 있다.

(에즈기) 비극적인 상황의 허망함 속에서 희망을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무척 많은데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터키의 소설에선 느껴보지 못해 인상적이다. 서로 모순되는 상황이나 정서가 동시에 녹아 있기도 하다. 자연물을 노래하면서 사상을 투영시키고, 연속된 행운 속에 비극을 내포시켜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제목 그대로 며칠씩 벌이가 없던 김 첨지가 간만에 돈을 꽤 버는 운 좋은 날이다. 그러나 그날 와병 중인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도 아내 걱정에, 아내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훌쩍이는 김 첨지의 모습이 압권이다. 죽기 전에 아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설렁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기도 하다(웃음). 짧은 소설 속에 우리는 기대와 다른 삶을 살게 마련이고, 설혹 기대와 다르더라도 또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황성진) 최근엔 김승옥 작가에게 관심이 많다. ‘무진기행’과 ‘서울, 1964년 겨울’을 비교 연구하고 있다. 두 소설 모두 서울이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될 뿐 아니라 1년 간격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문학 작품 속에서 서울이 어떻게 달리 묘사되고 기능하는지 공부하려고 한다.


왼쪽부터 석사 과정 중국인 황성진, 박사 과정 인도네시아인 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타라니, 터키인 에즈기 젱기제르.

-문학으로 먼저 접한 서울과 생활 공간으로서의 서울은 어떻게 다른가.
(황성진) 지난해 2학기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처음 한국에 왔다. 문학 작품 속 서울은 일제강점기나 산업화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할 때가 많아 직접 보고 겪으면서 느끼는 서울과는 괴리감이 크다. 민족적 특징과 문학적 정취가 농후할 줄 알았는데 너무 빨리 발전해서 그런지 전통적 색채를 찾아보기 힘든 점이 아쉽다. 한국 학우들한테서 ‘서울은 한국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전주나 경주, 춘천 등 지방에 가봐야 진짜 한국에 대해 알 수 있다고 하더라.

(에즈기) 안동 하회마을과 순천 낙안읍성을 추천한다. 특히 통영은 김춘수·유치환·김상옥 시인과 박경리·김용익 작가의 출신지다.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고장으로 역사적 의미도 깊다. 이야기가 갑자기 관광지 추천이 됐다(웃음).

(페비) 서울은 한국이 아니라는 말엔 동의하기 어렵다. 서울의 골목들, 인왕산과 윤동주 문학관, 서촌과 북촌 등지는 숨은 듯하지만, 문학적 정취를 띠고 있다. 명동·종로·동대문·남대문 등은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가들이 활동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에즈기) 그 시절 소설엔 특히 다방이 많이 등장한다(웃음). 서울 오기 전까지 다방이 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터키는 오스만제국이 700년 가까이 통치했으나 산업화시대를 겪으면서 마지막 100년 동안의 문명만 남아있다. 그마저도 유럽 쪽과 흡사해 역사의 정취를 느끼기 힘들어 아쉬운 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서구 문명을 수용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옛 모습을 일부나마 보존했던 것인지 전통의 숨결이 제법 남아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국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멀리 남의 나라에서 유학 중이다. 타향살이의 어려움은 없는지.
(에즈기) 7년 전 교환 학생으로 한국에 온 적이 있어 생활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일상의 제약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터키인은 인사 자체가 껴안고 뽀뽀하는 것일 만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게 힘들다. 학교 가까이에 살면서도 방역 지침 때문에 캠퍼스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황성진) 깊이 공감한다. 비대면 수업이 주를 이루면서 동기들도 못 만나고 교수님도 못 뵈었다. 첫 학기 땐 유학 생활에 적응하는 동시에 혼자 과제를 해야 해서 이만저만 힘들었던 게 아니다. 곁에서 고민을 나눌 학우가 있으면 참 좋겠는데 코로나 때문에 쉽지 않다.

(페비) 공부가 어렵다. 같이 공부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너무 뛰어나 나 자신이 기대에 못 미쳐 속이 상할 때가 많다. 유학 생활은 석사 때 이미 겪어서 그다지 어려울 게 없다.
(황성진) 서울대 학생의 우수함이 외국인 학생들에게 높은 압력으로 다가온다는 데에 공감한다. 그러나 외국인 학생은 한국 문학을 또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이 더 풍성해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대학에 진학했다면 그런 압력이 좀 덜하지 않았을까. 서울대를 선택한 이유는.
(에즈기) 터키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고, 학위 취득 후엔 본국으로 돌아가 모교인 에르지예스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게 된다. 이런 입장에서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수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황성진) 동의한다. 서울대는 한국 최고의 명문 대학이자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대학이다. 또한 외국에서 한국 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서울대 교수의 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 책으로 먼저 접한 교수한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서울대를 선택한 요인이다.

(페비) 석사 때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3개의 한국 대학에 입학 제안을 받았었다. 그때 인도네시아에 있던 한국인 선생님의 추천으로 서울대를 선택했다. 한국 문학의 본거지에서 한국 문학을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국에 다시 왔다. 조금은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웃음).

-각국의 한국어 또는 한국 문학 교육은 어떤가.
(황성진)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 때부터 융성했지만, 그전부터 베이징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의 동아시아학과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학을 가르쳤다. 대학원 과정에선 아시아-아프리카 언어계열 혹은 동아시아언어계열의 범주 안에 있다.

(페비) 인도네시아에선 2003년 전문대로 한국어학과가 처음 설립됐다가 2007년엔 4년제 한국어학과가 생겼고, 몇 년 전엔 한국어문화학과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름이 바뀐 만큼 더 폭넓게 한국에 대해 배운다.

(에즈기) 터키는 1989년 앙카라대학을 시작으로 2000년 에르지예스대학, 2016년 이스탄불대학 등 총 3개 대학에 한국어문학과가 설립됐다. 에르지예스대학은 2010년 가을학기부터 한국어문학과 대학원을 설립했고, 2012년엔 야간 교육을 시작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