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45호 2023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ISO 회장직, 일대일로 밀어붙이는 중국 따돌리고 따냈죠”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

“ISO 회장직, 일대일로 밀어붙이는 중국 따돌리고 따냈죠”

조성환 (기계공학80-84)
현대모비스 대표




한국인 첫 국제표준화기구 수장에 올라
현대모비스 부임 후 연매출 50조 넘어서

매일 새벽 30분 명상이 가장 소중한 시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서울대 학풍으로


지난해 9월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사장이 한국인 중 처음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 차기 회장에 선출됐다. 베스트셀러 ‘축적의 시간’ 저자인 이정동(자원공학86-90) 모교 교수는 지난 6월 본회 조찬포럼에서 “표준을 지배하는 자가 비즈니스 질서를 정한다”면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표준화기구 수장을 배출했다는 건 한국 기술과 산업에서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8월 10일 현대모비스 본사에서 조성환 대표를 만나 ISO 수장으로서 소감, 포부 등을 들었다. 조 동문은 2024년부터 ISO 회장 2년 임기를 시작한다.



대담: 김광덕 (정치82-86) 서울경제신문 부사장겸 논설실장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새벽 4시쯤 일어납니다. 씻고, 1시간 정도 명상, 기도, 독서를 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다음 식사하고 5시 40분쯤 집을 나섭니다. 집이 수원인데, 회사 오면 6시 40분 정도 됩니다. 이후는 보통 일과를 처리하고요. 9시 전후 잠자리에 듭니다. 보통 6시간 30분 자는 셈이죠. 오래된 습관입니다. 루틴이 깨지면 살짝 불안합니다. 특히 아침 명상 시간이 중요하거든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지요. 여러 생각을 정리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등 저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내년부터 ISO 회장직을 수행하시는데, 소감과 포부를 말씀해 주십시오.
“개인적으로 큰 영광입니다. 우리나라가 ISO에 1963년 가입했는데, 한 번도 회장을 배출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회장국이라 해서 우리나라 표준 활동이나 국제적 위상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제가 회장 역할을 잘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가 국제 민간기구에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도록 노력해야죠. 실질적인 포부라면 한국 출신의 회장이 뭔가 ISO 역사에 남길 만한 기여를 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걸 계기로 우리나라 국가기술표준원이 한 단계 발전하고, 표준 활동 기구 참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으면 합니다.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특히 전기차(EV) 등 미래 모빌리티 경쟁에서는 원천기술인 글로벌 표준특허를 많이 가진 나라와 기업이 세계를 제패하게 됩니다. 자동차, 반도체 등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빠른 각종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표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기술 발전이 이뤄지면 표준화 작업이 뒤따르게 되어 있는데, 저는 ISO 회장으로서 글로벌 표준과 혁신기술 사이의 리드타임을 줄여나가고 회원국들이 관심을 두는 현실 문제를 청취하며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ISO 회장에 출마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중국이 10여 년 전부터 일대일로 정책 중 하나로 공들인 게 표준화 관련 일입니다. ISO 상임이사국은 물론 ITU(국제전기통신연합), IEC(국제전기표준화회의)의 주요 직책을 맡게 되죠. 작년 선거가 있을 때 마침 IEC, ITU 주요 직책에서 중국이 내려오는 때였어요. ITU는 미국인, IEC는 벨기에 사람이 됐는데, ISO는 한국에서 맡아 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미국 등 서방 진영으로부터 왔습니다. 국가기술표준원에서 저희 현대차그룹으로 요청이 왔고 그룹에서 저를 추천한 거죠. 처음에는 단독 후보로 알고 수락을 했는데, 중국에서 후보를 내는 바람에 경선이 됐습니다. 총회 3개월을 앞두고 선거 운동을 했습니다. 그룹의 해외망과 코트라 등의 국제조직을 활용하고, 브라질, 프랑스 등 주요 회원국 실무자를 만나 지지를 호소했죠. 코로나 시기라 영상을 통한 선거 활동도 열심히 했고요. 다행히 꽤 큰 표차로 당선이 됐습니다.”

-한국이 주도할 만한 표준이라면.
“우리나라가 어떤 표준을 주도할 수 있을까 말씀 전에, 표준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무슨 활동을 하든 표준에서 벗어나서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표준을 지키지 않으면 수출도 할 수 없지요. 국가 표준 활동 점수가 있습니다. ISO에 참여하는 163개 회원국 중에 우리나라가 8위입니다. 그만큼 표준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양자역학, AI, 메타버스,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기술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이러한 미래 기술 분야도 다 표준화가 돼야 합니다. ESG 분야도 빼놓을 수 없고요. 첨단 미래 분야에서 우리에게 기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통신이 앞서 있는 우리나라가 6G에서 표준을 정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술 개발을 하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게 결국은 표준으로 이어져야, 소위 말하는 ‘큰 흥행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경제 발전과 표준, 기술 발전과 표준, 그런 함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죠.”

조 동문이 대표로 부임 이후 현대모비스 연매출이 50조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계 6위 규모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ISO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B2B(기업간거래) 중심인 현대모비스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다. 조 동문은 “우리 회사를 단순 자동차 부품 회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급 인재 확보 차원에서도 우리 회사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고 했다.

-현대모비스가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전동화 분야에서도 많은 기술을 갖고 있죠? 비전을 들려주십시오.
“모비스의 사업영역이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돼 있습니다. 서비스 사업, 모듈, 부품 제조. 이 세 가지 영역이 모두 중요한데, 우리가 B2B(기업간거래)로 사업을 주로 하다 보니 모비스가 뭐 하는 회사인지 구체적으로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급 인재들이 많이 필요한데, 어필하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이번 인터뷰가 모비스라는 회사의 본질을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지난 2023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행사 때 ‘완벽한 품질을 갖춘 소프트웨어와 최적화된 반도체가 결합된 통합 솔루션을 제공해 모빌리티 플랫폼 프로바이더(Mobility Platform Provider)로 도약한다는 전략’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모빌리티 플랫폼 프로바이더’는 전동화,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등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핵심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를 다양한 고객의 니즈에 맞게 모듈화해 통합된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빌리티 전문 기업을 의미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기아차 의존도를 줄이고 다른 완성차 업체로 매출을 늘리려 해요. 고객 베이스를 넓히면 그만큼 안정적인 회사가 될 수 있고, 기술적으로 앞서가는 회사가 되는 겁니다. 모빌리티 플랫폼 프로바이더로의 전환, 그리고 현대기아차를 넘어 글로벌 메이커로서의 변신. 이 두 가지가 변화의 핵심입니다.”

-자율주행차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대모비스의 기술은 어느 수준에 와 있나요?
“현재 모비스는 레벨3의 기술을 개발, 양산하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가 올해 레벨3를 제네시스, EV9에 적용하는데 거기 부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3단계는 어떤 수준인지.
“쉽게 말해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놓고 잠깐 딴짓을 해도 되는 수준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차가 책임지고 주행을 못하면, 내가 다시 핸들을 잡고 운전해야 하는 게 3단계입니다. 덧붙여 4단계는 제한된 상황에서 스스로 운전하는 상태고, 5단계는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운전하는 것이고요.”

조 동문은 본고사 마지막 세대로 당시 최고 인기 학과였던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것에 자부심도 크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문과 계열 학과로 진학하라고 조언했지만, “기술이 최고”라며 공대를 권유한 부친을 믿고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교수를 꿈꾸며 미 스탠퍼드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현대차 입사 배경이 어떻게 되십니까.
“기계를 전공하면서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었습니다. 내연기관을 전공했죠. 당시 한창 그 분야가 각광 받을 때였어요. 박사까지 하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공부하며 돈도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게 한국에서는 어려웠습니다. 포항제철의 유학 장학생 프로그램에 응시해 선발이 됐습니다. 그리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로 갔죠. 박사 학위 후 연구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석사 때 지도교수님이 현대차로 오라고 해서 바로 들어왔죠. 공부하면서 교수도 좋겠지만, 사회로부터 많이 받았으니 기업에 가서 기여하자 해서 왔죠. 현대차는 대학원 다닐 때도 프로젝트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익숙한 회사였고요. 마북리 연구소로 출발해 엔진 전문가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죠. 처음엔 조금만 하다 학교로 옮길 생각도 있었는데, 배운 것을 실제로 써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내년이 근무한지 30년째입니다.”

-보람된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미쓰비시와 크라이슬러에 세타 엔진 라이선스를 팔았을 때가 기억납니다. 현대차가 미쓰비시의 엔진을 들여다 시작했었는데, 기술을 수출하게 된 거죠. 또 싼타페에 승용 디젤 엔진을 처음 장착해 크게 붐이 일었습니다. 그런 개발 과정에 참여해 결실을 맺었을 때 보람이 컸죠.”

-내연기관 전문가로 살아오다가 전동화 시대를 맞았는데요.
“2012년 미국연구소 소장으로 부임을 하면서 엔진 개발에서는 손을 떼고 관리자로서의 경력이 시작됩니다. 미국서 4년 근무하다 한국 연구소에 연구개발기획조정실장으로 발령받았습니다. 기획하고 전략 짜는 일이지요. 그 무렵 전동화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영관리 분야로 완전히 트랙을 바꾼 다음이죠. 그래서 전동화에 대한 개인적인 전환의 어려움은 크지 않았습니다. 시기가 잘 맞았습니다.”

-경영을 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원칙을 말씀해 주십시오.
“구성원과 저 스스로한테도 항상 말하는 게 자기관리의 중요성입니다. 작게는 건강, 시간, 가족, 태도 등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자기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결국 개인의 완성을 결정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CEO는 여러 복잡한 상황에서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깨어있고 생각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무리하면서 대표님에게 서울대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많은 덕을 받았습니다. 해외에서도 서울대 나왔다고 하면 인정을 해줍니다. 동기나 동문들이 요소요소에 있어서 받은 도움도 크고요. 아쉬운 것은 저와 같이 산업계에 있던 사람들을 보면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습니다. 친구들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분명 훌륭한 자질과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태도와 열정 면에서 무엇인가 아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인성 또는 정신적인 측면 이런 것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서울대만의 학풍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서울대인 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리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정리=김남주 기자


조 동문은

1961년 서울 태생. 영등포고 졸업 후 1980년 모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해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 부문에서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현대자동차에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해 디젤엔진 개발에 주력했다. 자동차 반도체 및 S/W 분야 사업을 수행했던 현대오트론의 대표이사, 현대자동차 부사장 겸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을 지냈다. 현대모비스로 자리를 옮겨 R&D부문장, 전장BU장을 거쳐 2021년 3월 대표이사·사장에 선임됐다.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