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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2024년 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월급 외 회삿돈은 1원도 안 써요, 결근 한번 안 했고요”

장학금 5억원 쾌척한 공대 삼형제

“월급 외 회삿돈은 1원도 안 써요, 결근 한번 안 했고요”

장학금 5억원 쾌척한 공대 삼형제

이승준 (섬유공학56-60) 풍국산업 명예회장
이청원 (자원공학62-67) 풍국산업 회장
이승익 (화학공학75졸) 재미공인회계사




이승준(사진 왼쪽)·이청원 동문 형제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포즈를 취했다. 아래 사진은 넷째 동생 이승익 동문.





“서울대 덕에 성장…작은 보답 당연”
58년 가방 외길 국내 최대 업체 일궈
80여 개 고객사…지난해 매출 7300억원
아버지 방에 적혀있던 근면·성실·실천 가훈
회사 운영하는 경영 철학으로 삼아


공대 동문 3형제가 본회 장학금으로 5억원을 쾌척했다. 큰형님인 이승준 풍국산업 명예회장은 기부 약속을 하고, 다음날인 12월 11일 바로 5억원을 송금했다. 이승준·이청원 형제는 앞서 2005년에도 5000만원을 기부한 바 있다. 이번엔 미국에 있는 넷째 동생 이승익(화학공학75졸 공인회계사) 동문도 함께했다.

지난 1월 9일 풍국산업 성남 본사 회의실에서 이승준·청원 형제를 만났다. 회의실 양 벽면에 진열돼있는 다양한 종류의 가방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58년간 풍국산업에서 생산해온 대표 가방들이다. 이승준 동문이 1966년 설립한 풍국산업은 코치, 아디다스,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가방을 제작, 납품하고 있다. 셋째 동생 이청원 동문은 1970년대 중반부터 풍국산업에 합류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특별한 것은, 최근 창업자 이승준 명예회장이 차세대 경영권을 직계 가족에게 넘기는 상례를 깨고 조카인 이상협(이청원 회장의 아들) 사장(대표이사)을 지명했다는 사실이다. 회사 관련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답변은 이승준 명예회장이 대표로 했고, 간간이 이청원 동문이 설명을 곁들였다.


-조카에게 경영권을 넘겨줄 때 가족 반응은 어땠나요?
“기본적으로 모두가 회사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지요. 이상협 사장이 대우차 엔지니어로 일하다 29년 전부터 풍국산업의 해외공장 영업, 생산을 총괄해 왔습니다. 바이어 관리 등 일을 아주 잘 해요.”

-전시된 가방을 보니, 무척 다양한 브랜드의 가방을 OEM(주문 제작)하고 있네요.
“고객사가 80여 개사 됩니다. 아디다스와 노스페이스는 전 세계 가방 판매량의 50% 이상을 풍국산업이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코치(COACH), 마이클코어스(MICHAEL KORS), 이스트팩(EASTPAK), 랄프로렌(RALPH LAUREN) 등의 가방도 저희가 만들고 있고요. 매년 아디다스에서 협력사를 대상으로 시상식을 하는데, 2013년 저희 업체가 동시에 3개 부문 최고상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디다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답니다. 58년간 가방 한 길만을 걸어온 이 분야 최고 업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풍국산업의 지난해 매출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간단하게 회사 소개를 해주신다면.
“현재 베트남 6개 공장, 인도네시아 2개 공장, 미얀마 1개 공장에 3만여 종업원들이 세계 50여 개국에 제조 수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7300억원 수준입니다.”

-자체 브랜드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20여 년 전부터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도전하고 있지만 고전 중입니다. 여행 캐리어 전문 브랜드인 트래커(TRACKER)와 여성 캐주얼 가방인 프렌치쿼터(FRENCH QUARTER)의 인지도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체 브랜드 시장은 이상협 사장이 장기 과제로 두고 잘 개척해 나가리라 믿고 있습니다.”

-가방은 교체 사이클이 긴 상품이라 매출이 계속 늘어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옷, 신발과 비교해서 분명히 그렇죠. 시장 규모도 옷, 신발이 크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오랜 전통과 품질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우리를 찾는 업체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 기간에 무척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그랬죠. 특히 베트남 공장 운영이 힘들어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닙니다. 종업원들의 이동이 제한돼 있어, 공장에 기숙사를 만들어 이동 없이 그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행 금지, 휴교 등의 영향으로 주문량도 급감했지만, 잘 버텨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차입경영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놀라운 일입니다.
“건전재정을 경영 방침으로 두고 있습니다. 절대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고, 수익금 전체를 회사 발전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팩토리를 위한 시스템 개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교육 투자 외 부동산 투자 같은 건 일절 없습니다. 생산시설에만 100% 투자합니다.”

경영 철학을 묻는 질문에 이승준 동문은 아버님의 칠판 글씨를 보여줬다.

“아버지 방에 조그마한 칠판이 있었는데, 거기에 이런 한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근면, 성실, 실천, 창조. 이게 우리 집 가훈이 됐고 회사 사훈이 됐습니다. 결근한 적 하루도 없고, 매일 7시면 출근합니다. 저는 회사 카드도 없습니다. 회삿돈은 월급 외 1원도 안 씁니다. 골프 비용도 내본 적이 없습니다. 남산 터널 지나잖아요? 톨게이트비도 제 돈으로 냅니다. 모두 아버님의 가르침입니다.”

인터뷰에 동석했던 회계담당 임원이 “우리 회사는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나와도 너무 깨끗하니까, 오히려 놀라서 간다”고 했다. 2013년 국세청에서 2개 업체만 시상하는 ‘조사모범납세자’로 선정되기도 했고, 2019년엔 성실납세자 인증도 받았다.

-정직하게 버신 돈으로 5억이라는 거금을 동창회에 쾌척해 주셨습니다. 동창회에 아는 임원이라도 계신가요?
“총동창회와는 어떤 인연도 없습니다. 아는 임원도 없고, 권유받은 적도 없습니다. 서울대에 대한 사랑 하나만 있었지요. 우리 3형제가 서울대 덕을 많이 받았고, 그에 대한 작은 보답입니다.”

-어떤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이 돌아가면 좋을까요?
“요즘은 이렇게 저렇게 등록금 정도는 다 구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잘 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승준 동문 형제의 부친이 남긴 칠판 글씨. 여기 적힌 근면, 성실, 실천, 창조가 이 동문 형제 가족의 가훈이자 회사의 사훈이 됐다.


-형제 세 분이 공대생인 게 특별합니다.
“당시 창원, 울산 등지에 공단을 많이 만들었잖아요? 요즘 의대를 선호하듯이, 공대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형제 간 우애도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이청원) 큰형님이 6남매를 이끌어주셨어요. 형님이 대학시절 방학 때 부산 집에 내려오면 동생들의 가정교사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때로는 기합도 주시고요. 저도 형님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서울대에 갈 수 있었습니다.”

-넷째 이승익 동문은 여기 안 계시지만 소개를 해 주신다면.
“(이청원) 승익이는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았습니다. 사실 회사 일도 다 같이 했으면 했는데, 여의치 않아 미국으로 가게 된 거죠. 서울대 졸업 후 위스콘신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공인회계사를 획득했어요. 지금도 그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보시나요?
“(이청원) 지금은 카카오톡 등 SNS가 발달 돼서 자주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가족 간 큰 행사가 있을 때 모이기도 하고요.”

-세 분이 서울대를 나오셨는데, 자녀나 손주 중에서는 동문이 없을까요?
“(이승준) 딸이 음대 기악과(피아노)를 나왔습니다.”

-총동창회 외에도 기부 활동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청원) 형님은 ‘사랑의 열매’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 멤버이기도 합니다. 우리 회사는 종업원들에게 점심 무료급식을 초창기부터 지키고 있습니다. 성남시 주변의 사회단체에 쌀기부 등 지속적으로 나눔 활동을 하고 있고요. 베트남에서는 매년 신학기에 가방 1000개를 초등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취약 가정 집짓기 운동에 참여해 60채의 집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서울대는 두 분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이승준) 모교인데 무슨 존재일 거 있습니까? 저나 마찬가지죠. 지금도 동기생들을 매년 분기별로 만나고 있습니다. 입학 당시에는 40명이었으나, 10명 정도 모이고 있어요. 가장 즐거운 모임이고 기다려지는 모임이죠.
(이청원) 타 학교 출신들이 잘 하는 거 보면, 내가 명색이 서울대를 나왔는데,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닌가,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계기가 됩니다. 늘 저를 한 걸음 더 뛰게 만드는 존재죠. 가방 산업이 전자, 자동차 산업 등에 비하면 작아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 분야의 월드베스트가 되자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50년을 그렇게 살아온 원동력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을 말씀해 주신다면.
“(이승준) 4월 선거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소망 하나입니다. 그게 우리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국민성을 정치가 따라가 주길 바랍니다. (이청원) 이제 2세대 경영이 시작됩니다. 지금도 세계 최상위 업체이긴 합니다만, 매출 규모를 두 배 이상 늘리고 싶은 꿈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 기반을 올해 닦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