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호 2021년 1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리더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여주는 안내자”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인터뷰
“리더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보여주는 안내자”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3M 평사원 입사 총괄 수석부회장까지
LG화학 70년만에 첫 외부 영입 인사
제31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수상
“지속가능 미래를 만드는 일에 앞장”
신학철(기계공학75-79) 동문은 글로벌 기업인 3M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이상 모델로 불린다. 2018년 말, LG화학이 1947년 창립 이후 외부에서 처음 영입한 CEO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신 동문 부임 이후 지난 2년간 LG화학의 시가총액은 25조원에서 55조원 대로 두 배 이상 올랐다. LG화학의 체질 변화와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최근 정기인사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서울대는 지난 10월 신 동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제31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했다.
11월 25일 한강이 한눈에 보이는 여의도 LG트윈빌딩 동관 집무실에서 만난 신 동문은 탄소중립에 대한 글로벌 리더십에 큰 관심을 나타내며 “LG화학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평사원에서 CEO가 되기까지의 여정 등을 1시간에 걸쳐 묻고 들었다.
대담 : 김영희(고고미술88-92) 한겨레 선임기자
대담 : 김영희(고고미술88-92) 한겨레 선임기자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내로라하는 선후배님이 계신데 자격이 되나, 반문을 많이 했습니다.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고, LG화학의 후광이 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30년 글로벌 경험을 한국 기업에 전수한다는 것에 대한 인정도 받는 것 같아 감사하고요.”
-공릉동으로 입학해 관악에서 졸업을 한 세대시죠.
“자연계열, 인문계열 등 계열별 모집 첫 세대였던 것 같아요. 1학년 때 교양과정을 함께 공부하고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했지요. 학창시절 대부분은 공릉동에서 보냈고, 4학년 때 관악으로 와 졸업을 했어요. 당시 관악캠퍼스는 건물도 몇 개 없고 휑했죠.”
-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마이티라고 아세요? 카드 게임의 일종인데, 공대에서 굉장히 인기였어요. 당시 윤천주 총장님 계실 때인데, 오셔서 보시다가 카드를 빼앗아 가기도 하셨어요(웃음).”
-인터뷰 준비하면서 2012년 부회장님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봤어요. 변함없으세요. 미국, 필리핀 등 해외에서 오래 생활한 장점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36세 때 나가 2019년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 해외에서 지냈지요. 세계 각국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이 가장 큰 재산 같습니다. 미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지금도 많은 분들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전공과는 무관한 해외영업을 하셨어요.
“기술 영업이라고 하죠. 기술적인 설명이 필요한 일이 많았어요. 그러면서 고객들을 도와줄 일이 많았는데, 당시 본부장께서 영업을 권유해서 하게 됐죠. 고객을 만나 일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흥미를 갖고 하다 보니 마케팅까지 하게 됐고, 운이 좋아 관리자 자리까지 계속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필리핀 지사장으로 가셔서, 퇴임 때 현지 직원들이 촛불 파티를 열어준 부분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노사분규 해결을 위해 모든 직원들을 1대1로 만나셨다고요?
“3년간 필리핀에서 느낀 게 많아요. 어느 조직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뭔가를 주장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면 답이 보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면 거기서부터 굉장히 큰 에너지가 나오더라고요. 당시 750명 직원이 있었는데, 하나로 뭉쳐지니까 그 응집된 힘이 대단했습니다. 불과 2년 반 만에 매출액이 두 배가 넘었으니까요.”
-사람 마음을 얻는 게 가장 힘든 일인데.
“필리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도 그대로 했고, 한국에 와서도 같은 마음으로 직원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주장을 확실하게 펴야지, 겸손하게 이야기하면 손해라고 말하지만, 세상 어디나 겸손의 가치는 같은 것 같습니다.”
-부회장님 평소 말씀 중에 ‘오버플로우 시어리(Overflow Theory)’가 인상적입니다.
“승진하는 과정에서 몸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입사하면 회사는 각 개인에게 하나의 그릇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이것을 넘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회사 입장에서 능력과 성과를 넘쳐 흘려버린다는 것은 큰 손해죠. 대부분 그 그릇이 넘치기 전에 더 큰 그릇을 제공합니다. 그게 또 넘치려 하면 다음 단계가 찾아오는 것이죠.”
-3M에서 LG화학으로 옮긴 이유는 어떻게 되세요.
“3M에서 회장 바로 아래까지 올라갔는데, 입사할 때 이렇게까지 될 거라 꿈도 못 꾸었던 게 사실입니다. 기대치를 훨씬 초과한 거죠. 퇴임 후 강연이든 어떤 형태든 한국에 글로벌 기업에서의 경험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버님도 한국에 계시고요. 마침 LG화학에서 제안이 와서 적극적으로 임했죠.”
-와서 보니까 어떻던가요?
“생각했던 것보다 강점이 많은 회사였어요. 첫째는 구성원들의 능력이 우수합니다. R&D 부서의 15%가 박사학위자입니다. 두 번째는 기술 수준이 깊고 넓었습니다. 세 번째는 LG화학이 가진 다양한 포트폴리오 였어요. 석유화학 기업이지만, 자동차 배터리 쪽으로 막 뻗어가고 있었고 바이오 생명과학, 첨단 소재 부분 등 미래 지향적인 사업 분야가 잘 짜여 있었습니다.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한 업체 중에 이렇게 미래지향적인 포트폴리오를 갖는 회사가 드물어요. 마지막으로 실행력이 무척 우수합니다. 외부에서 CEO가 왔다고 하면 뭔가 바꾸고 혁신하길 기대할 텐데, 이렇게 강점이 많은 회사라서 ‘강한 회사를 더 강하게 만들자’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습니다. 진정한 글로벌 회사로 나아가고, 좋은 기술력을 고객 니즈에 맞춰 상용화하는 능력을 좀 더 강화해 나가자고 주문했어요.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수평적인 유연한 문화로 바꾸기 위한 노력도 했고요.”
-기업의 ESG 중요성을 강조하는 CEO로 알려져 있습니다.
“LG화학은 ‘탄소중립’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2020년 7월 국내 화학 업계 최초로 ‘2050 탄소중립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지속가능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제가 3M에서 15년 이상 이 분야를 직접 담당했기 때문에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왜 사업을 하고, 누구를 위해서 하느냐. 결국 가치 창출을 위해서 비즈니스가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고객, 회사 구성원, 주주,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가치를 창출하는 게 기업의 목적이죠. 이런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지속가능 같은 주제죠. 그래서 LG화학이 선제적으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세워 추진해 나가고 있고요. 전 세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나가거나, 제품 생산에 있어서도 바이오 플라스틱 같은 친환경 화학제품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탄소중립이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것도 사실일 텐데요.
“물론 큰 부담이죠. 그런데 환경문제는 기업이 앞장서 해결하지 않으면 방법을 찾기 힘듭니다. 1년에 우리나라에서 약 7억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데 대부분이 공장에서 나오는 겁니다. 제철·석유화학·시멘트 회사, 발전소 등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이죠. 우리가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 때 탄소를 28g 배출하는 것과 520g을 배출하는 제품의 차이가 지금은 큰 의미가 없지만, 곧 의미있는 날이 올 겁니다. 규제도 생길 거고요. 음식 포장지에 열량이 쓰여진 게 얼마 안 됐잖아요? 그것처럼 화학제품 등에 탄소를 얼마나 배출해서 만들었는지 명시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고, 소비자들도 탄소를 덜 배출해 만든 제품을 선택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입니다. 선제적으로 한다는 것은 어렵고 돈도 많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엄청난 경쟁력이 될 겁니다. ”
-LG화학 구성원 절반이 2030세대라는 기사를 읽은 적 있습니다. 여러 가지 소통 노력을 제도화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LG화학 구성원의 67%가 MZ세대일 정도로 그 비중이 높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10~20명 규모의 임직원과 직접 만나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고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스피크업 테이블(Speak Up Table)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올해로 벌써 60여 회를 넘어섰습니다.”
-코로나19가 기업에 준 도전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세계 기업들은 수십년 걸릴지 모를 변화가 단기간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고 봅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전부터 준비를 해왔고, 외부 환경이 바뀌길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실행했습니다.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며, 현금 흐름을 개선하는 등 원칙을 지켜나간 것입니다. 그 결과 LG화학은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코로나19 기간 기업가치가 가장 많이 증가한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코로나19 기간,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끝난 다음의 상황이 굉장히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국제경쟁 사회에서, 기업에게 2년은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매일 90분 책을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90분씩 책을 읽는다기보다 지식 습득을 위해 한 시간 이상 투자를 합니다. 아침 운동 전에 인터넷으로 집중적으로 보고, 파이낸셜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을 챙겨 봅니다. 1년에 한두 개 정도의 주제를 정해놓고, 틈날 때마다 관련 서적을 읽는 등 공부를 꾸준히 하고요. 예를 들어 AI, 미중관계 이런 주제를 놓고요. 매년 이렇게 한두 개의 전문 지식을 꾸준히 공부하다 보면 상당한 깊이에 까지 이르게 되더라고요.
비즈니스를 해보니까, 공부가 무척 중요합니다. 리더가 공부 안 하면 자격이 없는 거예요. 현재 직원이 2만명, 가족까지 생각하면 8~10만명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공부하지 않고, 미래를 읽지 못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많은 분들이 피해를 보는 거지요. 사실 리더의 역할은 끊임없이 미래를 이야기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형상화해서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추세로 탈 탄소 환경이 진행된다면 2030년은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그때의 모습을 시뮬레이션 해보면 지금 모습과 아주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재학생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지평을 넓히라는 말씀을 드리는데, 개인적인 지평이든 자기 조직의 지평이든 좀 더 넓히는 게 우선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프로필
△1975년 청주고 졸업 △1979년 모교 기계공학과 졸업 △1984년 한국3M 입사 △1991년 한국3M 소비자사업본부장 △1995년 3M 필리핀지사장 △2002년 3M 전자소재사업부장 부사장 △2005년 3M 산업용비즈니스 총괄 수석부사장 △2011년 3M 해외사업부문 총괄 수석부회장 △2019년 LG화학 부회장 △2009년 대한민국 국민포장 △ 2014년 자랑스러운 공대 동문상 △2021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정리=김남주 기자
정리=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