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13호 2020년 12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세밑에 생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의구 국민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세밑에 생각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의구
철학80-84
국민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홍콩 배우 주윤발은 2년 전쯤 전 재산을 자선단체 등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시 그의 재산은 56억 홍콩달러(7,800억원)로 추정됩니다. 그는 평소에도 싱가포르 거상 가문 출신인 부인이 설립한 기부단체를 통해 사회 환원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기부가 오랜 전통이자 널리 공유되는 문화입니다. 카네기는 2,500개 도서관을 건립하고 평화 증진 등을 위해 95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록펠러 집안의 기부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빌 게이츠 MS 회장은 지구촌 보건 향상과 극빈자 구호 등을 위해 358억 달러를 쾌척해 기부액 순위 역대 1위입니다.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 구루의 기부액도 340억 달러와 61억 달러에 이릅니다. 3억 달러로 추산되는 오프라 윈프리, 앨튼 존 같은 연예인의 기부도 활발합니다. 이들의 선행은 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계층 사이 위화감을 줄여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합니다.

우리 사회 그리고 동문 중에도 미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모교에 혁신발전기금 10억원을 기부한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은 큰 재해가 날 때마다 거액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 원로배우 신영균 선배 등도 있습니다. 관악회에 따르면 동문들의 동창회 기부 누계는 8,000여 명, 486억원에 이릅니다. 2015년 시작된 풀뿌리장학기금엔 340명이 매월 소액을 정해 기부, 총액이 10억원을 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온 국민이 유례없이 고단한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자영업이 도탄의 위기에 빠졌고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선단체들은 목표치를 낮춰 잡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더 힘든 계절입니다. 스산한 세밑,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해 봅니다. 마이클 샌델의 최근 저서에서 개인의 성취는 노력만이 아니라 태생적 운과 사회적 환경이 결합해 얻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능력주의에 매몰되면 승자에게는 오만, 패자에게는 좌절감을 초래해 유대를 상실하게 된다고 봅니다.

자가용이 없고 매달 용돈이 11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주윤발은 기부 이유에 대해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곧은 생각, 정갈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집니다. 거액이 아니어도, 굳이 동문회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입니다. 여러 구호단체도 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니 성큼 걸음만 내디디면 될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