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12호 2020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귀차니즘과의 결별, 지구를 지킨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본지 논설위원


귀차니즘과의 결별, 지구를 지킨다




신예리

영문87-91
JTBC 보도제작국장·본지 논설위원



무분별한 소비 환경파괴 초래
나눠쓰기 다시쓰기 실천할 때


몸무게, 시청률, 그리고 미세먼지. 날마다 눈 뜨면 이 세 개의 숫자를 확인하는 걸로 아침을 열곤 했다. 그 중 세번째 수치가 특히 일과를 좌우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할지 말지, 빨래를 돌려 널지 말지… 몸에 밴 오랜 습관이 달라진 건 다름 아닌 코로나 덕분(?)이다.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사람과 물자의 이동, 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멈춰 세우며 거짓말처럼 공기가 깨끗해졌으니 말이다. 언젠가부터 맑고 푸른 하늘이 ‘뉴 노멀’로 자리잡으면서 나의 아침은 나머지 두 개의 숫자만으로 열리게 됐다.

그런데 얼마 전 까맣게 잊고 지내던 미세먼지가 돌아왔다. 둘 중 하나도 견디기 힘든데 코로나와 미세먼지 이중고에 시달릴 줄이야. 어차피 써야 하는 마스크 한 장으로 바이러스도 막고 먼지도 막으니 일석이조 아니냐는 말에 쓴웃음이 났다. 이번 불청객의 귀환은 국내 방역 수위가 2.5단계에서 1단계로 낮아지며 사람들 활동이 부쩍 늘어난 게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이 섣부른 코로나 종식 선언과 함께 공장들을 다시 돌리고 나선 탓도 크단다. 이래저래 며칠째 다시 뿌옇게 흐려진 하늘을 보며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환경에 얼마나 큰 폐해를 끼치는지 새삼 절감하게 됐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의 학대로 신음해온 지구가 벌이는 복수극”이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이처럼 인간 활동의 ‘일시 정지’로 놀랍게 회복됐던 지구촌 생태계는 언제든 ‘재생’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도로 피폐해질 게다. 미세먼지와 함께 우리 관심에서 멀어졌던 기후 변화의 속도도 더욱 빨라질 테고 말이다. 지난 여름 연달아 3개의 태풍이 한반도를 무섭게 할퀴고 간 것도, 이웃 나라들이 기록적인 장마와 홍수에 시달린 것도 모두 바다의 수온이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걸 다들 아시는지 모르겠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는 무섭게 늘었고 갈수록 더 늘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문득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몇 해 전 세상을 뜨기 전에 “인류 멸종을 막으려면 지구를 떠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가 변종 바이러스와 함께 최대 위험으로 꼽은 게 바로 기후 변화다. 인류가 온난화를 되돌릴 수 없는 시점에 이르면 지구는 섭씨 460도의 고온 속에 황산 비가 내리는 금성처럼 변할 거란 게 호킹이 남긴 준엄한 경고다.

“부디 행동에 나서달라”고 스웨덴의 Z세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소한 데 대한 응답일까. 얼마 전 국회 시정연설에서 마침내 대통령이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앞서 약속한 70여 개 국가와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된 거다. 문제는 여전히 ‘어떻게’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툰베리의 말을 다시금 빌리자면 “행동이 말보다 훨씬 의미가 크다”.

마냥 정부 탓만 하며 손 놓고 있기보단 각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찾아 하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싶다. 내 경우엔 아무 데도 못 가게 된 지난 추석 연휴 내내, 집 정리를 하다가 뒤늦게 ‘당근마켓’에 입문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쓸 만한 물건들을 그냥 버리는 대신 잘 닦아서 필요한 이웃에게 ‘무료나눔’ 하는 걸로 그동안 지구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기분이었다. 배달 용기 씻어 내놓기, 택배 박스의 테이프 떼고 버리기… 사실 스스로 할 일은 꽤나 많다. 다만 필요한 건 귀차니즘과의 결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