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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호 2020년 9월] 뉴스 기획

관악사 지키는 코로나 어벤저스

자가 격리시설 물샐틈없이 지켜 ‘뚫리면 끝’ 학내방역 최전선


관악사 지키는 코로나 어벤저스
고국서 돌아온 유학생들 “품어준 서울대, 자랑스럽다”

자가 격리시설 물샐틈없이 지켜
‘뚫리면 끝’ 학내방역 최전선
방호복 입고 교대 근무…식단부터 불편 상담까지




지난 8월 관악캠퍼스 906동 자가격리시설에 7명의 교직원과 근로장학생이 상주 근무하며 유학생의 격리 생활을 도왔다. (왼쪽부터)배기탁 관악사 코로나19 대응팀장, 재학생 우명선·염선호 씨, 이가우 동문, 관악사 직원 박휘종·박철규 씨.



“코로나 시국에 제일 위험한 자리에서 저희를 지켜주고 챙겨줘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708호 올림”

2학기 개강을 코앞에 둔 8월 말. 모교 국제학생(외국인 유학생) 자가격리시설로 운영 중인 관악캠퍼스 관악학생생활관(관장 노유선) 906동 본부 책상 위에 또박또박 눌러 쓴 편지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14일간 격리를 마친 학생들이 남긴 감사 편지다.

코로나19가 물러가지 않은 캠퍼스에 2학기가 돌아왔다. 전 세계에서 국제학생이 속속 입국하면서 모교도 분주했다. 1학기에 운영한 학내 자가격리시설을 재가동한 것이다. 입국이 집중된 8월엔 3주간 기숙사 한 동을 통째 비워 한국에 들어오는 국제학생들의 격리동으로 사용했다.

학내 방역의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24시간 지킨 이들이 있다. 중국에서 온 국제학생 이가우(리지아위·대학원15-20) 동문, 재학생 우명선(위밍셴·대학원 17입) 씨, 한국인 재학생 염선호(대학원 20입) 씨 등 근로장학생과 동문인 배기탁(행대원12-15) 관악사 코로나19 대응팀장 등 교직원 4명이다.

이 중 이가우 동문, 우명선 씨와 염선호 씨는 인문대 대학원 협동과정 비교문학전공 선후배 사이. 지난 봄 학내 격리시설 근로장학생에 자원해 방역 일선에서 일했고, 8월 초 이곳 격리동이 차려지자 두말 않고 달려왔다. 배기탁 관악사 코로나19 대응팀장 등 교직원들과 함께 여름 휴가도 반납하고 격리동에 상주하며 격리자들을 보살폈다.

격리시설 종료 이틀 전인 8월 27일, 906동에서 만난 이들은 하얀 방호복 차림으로 “격리시설에서 일하면서 서울대와 더 친해진 것 같다”며 웃음지었다. “전공 특성상 평소 통번역 업무 요청이 자주 들어와요. 지난 3월 중국 방문 학생 입국을 대비해 과에서 격리시설 근무자를 모집했는데, 저희 셋이 그때 처음 만났죠. 이번에도 학과 단톡방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어요.”

8월 7일부터 3주 동안 906동에 머무른 국제학생은 총 39명. 애초 230실 규모로 준비했지만 입국을 취소하거나 미룬 학생이 많았다. 미국, 에콰도르, 프랑스, 탄자니아,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이들은 공항에서 관악구 보건소로 직행하거나 906동 앞에 설치한 워크스루(도보 이동형) 선별진료소로 곧장 와서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고 입실했다. 2주간 격리 생활 후엔 다시 음성 판정을 받고 퇴거했다. 매일 체온을 재고, 구 및 보건소와 실시간으로 건강 상태를 공유했다. 
 


국제학생들이 입국 직후 906동 앞에 마련한 워크스루(이동형) 선별진료소로 와서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관악학생생활관


관악구 보건소 혹은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후 906동에 2주간 입소했다. 사진=관악학생생활관


906동 자가격리시설은 1학기 호암교수회관과 기숙사 격리시설을 운영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거꾸로 된 ㄱ자 모양의 건물을 사선으로 나눠 가벽을 세우고, 사용 층을 달리해 사무공간과 학생 격리공간을 수평, 수직으로 최대한 분리했다.

지난번 불만이 나왔던 식사 메뉴는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채식, 한식 등으로 다양화해 17개 메뉴를 마련했다. “학내 음식점에서 주문해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든 캠퍼스 내 가게를 돕는다”는 배기탁 팀장의 설명이다. 매일 오전 11시 50분까지 입실자 개개인에게 다음날 식사 메뉴를 신청받아 준비하는 것은 이가우 동문과 우명선· 염선호 씨의 업무 중 하나. 이들은 통역업무와 입실자 단체카톡방 관리를 비롯해 식사 배부 등을 맡아 격리된 학생들이 편하게 머물도록 도왔다.

“아무래도 음식이 잘 안 맞아서 힘들다는 얘기가 많아요. 하루는 ‘먹고 싶은 것 다 말해달라’고 이벤트를 열었더니 갈비탕, 삼계탕, 마라탕까지 다양한 음식이 나왔어요. 여기저기 주문하고 직접 픽업해 오느라 모두가 뛰어다녔죠.” 밥을 못 먹겠다는 격리자를 위해 이가우 동문이 직접 도시락을 준비해 주기도 했다는 염선호 씨의 귀띔이다. 

종일 방에 갇힌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려고도 애썼다. 식사를 담는 봉투에 귀여운 그림을 그리고, 메모라도 적어 문앞에 두고 오면 이내 “고맙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염선호 씨는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이상의 시를 한국어로 보냈더니 포르투갈 학생이 답시를 줬다”며 웃었다. 학생들의 모국을 소개하는 관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해외 우편발송이 어려워져 학생들이 고향에 쓴 편지를 EMS로 부쳐주기도 했다.




입실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해 준비한 17가지 식단.  사진=관악학생생활관



근로장학생이지만 아르바이트라기엔 궂은 일.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방호복을 입고 많은 사람을 세세히 챙겨야 한다. 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텐데 이 일에 자원한 이유를 물었다.

“지난 학기에 박사를 수료했어요. 그동안 공부만 하느라 다양한 사람을 겪어보지 못했고 중국에서도 봉사할 기회가 없었어요. 조금 위험해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우명선) “올해 석사 졸업 후 쉬고 싶기도 하고 학교에서 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 생각했어요.”(이가우)

염선호 씨는 “중국 유학 시절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서”라고 했다. “힘들 때마다 현지 친구들 덕에 버틸 수 있었어요. 올해 초 석사 입학하자마자 코로나가 창궐해 중국 학생들 입국이 어렵다는 얘기에 바로 자원했죠. 받은 게 많아서 갚을 기회가 온 게 마냥 기뻤어요.”

학내에 격리시설을 여는 것은 대학 중에서도 유례가 없던 모교의 용단이었다. 갑자기 기숙사를 닫으면 외국인 학생은 오갈 데 없고, 학생들을 품으려니 혹시 모를 학내와 지역사회 전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럼에도 지난 봄 중국과 대구·경북 등 위험 지역에서 온 학생들을 학교가 책임지고 관리해 건강하게 내보냈다. 그 자신감이 다시 한 번 격리시설을 여는 바탕이 됐고, 타 대학에도 좋은 선례를 보여줬다. 세 사람은 학생 신분으로 서울대 3만명의 안전을 지키는 코로나19 대응팀의 일원이 되어 함께 시행착오를 겪고, 매뉴얼을 만들어 왔다는 자부심이 크다.

이가우 동문과 우명선 씨는 특히 같은 국제학생으로서 모교의 조치가 “든든한 ‘빽’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3월에 우리가 일하는 격리시설 앞과 학교 곳곳에 ‘우한에서 온 중국인을 응원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요. 학생들도 유학생들이 힘든 걸 이해하고 착하게 대해줘서 너무 고마웠죠.”(우명선)

무탈히 흘러왔지만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꾸려온 격리동이다. 이들은 묵묵히 일해온 교직원들에게 더 큰 공을 돌렸다. “저희는 주로 앉아서 일하지만 선생님들은 쉴 틈이 없어요. 학생들이 필요한 물품을 공수해주고, 변기가 막혀도 달려가셨죠. 퇴거할 때 나오는 쓰레기를 모아서 치우는 일이 특히 힘드실 것 같아요.”(우명선)

“워크스루 검사를 오후에 많이 해요. 마스크에 장갑, 고글까지 껴야 하니까 한 번 다녀오시면 온몸이 다 젖어 있어요.”(이가우)

염선호 씨는 격리동 업무를 총괄한 노유선(식물85-89) 관악학생생활관 관장의 노고를 헤아렸다. “관장님께선 매일 들르셔서 관련 회의 내용을 공유해 주시고 때로는 자정 넘어서도 찾아오셔서 얘기를 나누시곤 했어요. 많은 분들의 고민이 쌓여서 바깥의 걱정과는 달리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시설을 운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관악학생생활관 906동 자가격리시설 근무자가 격리동에서 나온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14일의 격리기간 동안 생긴 쓰레기는 그때그때 배출하지 않고 모아뒀다가 관악구가 수거했다. 사진=관악학생생활관


입실자들이 머무는 공간을 청소하는 모습. 사진=관악학생생활관


폭염 속 워크스루 검사 대기자를 위한 차양 설치. 사진=관악학생생활관

입실자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은 날 노유선 관장은 특식을 선사했다. 근무하는 교직원도 주머니를 털어 간식을 돌리곤 했다. “어제는 오세정 총장님께서 피자를 사주셨는데 학생들 반응이 최고였다”는 우명선 씨의 말이다.

매일 날아드는 입실자의 감사 메시지와 편지도 근무자에게 힘을 보탰다. 마스크 벗은 얼굴이 낯선 대신 ‘눈빛만 봐도 알아보는’ 친구들이 생긴 셈이다. “학생들 퇴거하는 날에 직원끼리 돈을 모아서 케이크를 준비했어요. 케이크 먹을 때 ‘아, 이렇게 생겼구나’ 했죠(웃음).”(우명선) “제 영국인 친구가 자기 미국인 친구와 함께 서울대에 온다는 거예요. 이름을 들어 보니 제가 식사를 주던 친구였어요(웃음). 나중에 셋이 같이 등산 가기로 했어요.”(염선호)





입실자들의 감사 메시지(위 사진)와 편지 및 선물(아래). 사진=관악학생생활관


2학기 기숙사생 입사를 위해 906동 격리시설은 8월 29일 운영을 종료했다. 8월 하순부터 입국하는 학생은 호암교수회관에 마련된 격리시설이 맡는다. 906동 근무를 마무리하며 이들은 “우리가 한 일보다 더 많이 얻어가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염선호 씨는 “위기를 쉬운 방식으로 덮지 않고, 어려운 생각을 실현하려 노력하는 학교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잘 진행되다가 한두 명이라도 양성 판정이 나오고 기숙사 전체로 번지면 너무 많은 책임을 지게 되잖아요. 어렵고, 말도 안 되고,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 보여도 이렇게 해서 많은 학생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서울대가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었고, 개인적으로도 스토리가 생겨서 뿌듯해요. 중국 광저우에서 와서 3월에 격리됐던 제 동기는 이번 호암교수회관 격리동에 자원해 일하고 있어요.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은 직접 피부로 부대끼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염선호)

“‘세렌디피티’, 뜻밖의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요. 통역만 할 줄 알았는데 더 많은 것을 배웠거든요. 학부와 석사를 중국에서 해선지 처음 서울대에 왔을 땐 교환학생, 이방인으로 온 것 같았어요. 서울대와 서울대 사람들을 더 많이 알게 돼서 기뻐요.”(우명선)

“5년 동안 학교 다녔는데 총장님 뵙고 사진 찍은 건 처음이에요. 평생 한 번뿐인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주변을 배려하면서 살고 싶어요.”(이가우)

묵묵히 공지와 번역 업무를 완수해 동료들의 믿음이 두터웠던 우명선 씨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박사논문 준비 외에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 한때 머무르며 중국어를 가르쳤던 제주도도 그립다. 한국 드라마가 좋아 유학을 왔고, 졸업 후 한국에서 무역회사 등에 취업을 준비해온 이가우 동문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학교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신입생인 염선호 씨는 사회 생활을 하다 큰 결심을 하고 들어온 대학원인 만큼 하루빨리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되길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또 격리시설이 열리면 일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세 사람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다시 격리체제를 가동할 만큼의 비상상황, 이제는 돌아가야 할 개인 일상을 생각하면 편치만은 않은 질문이다.

“불러 주시면 와야죠.” 우명선 씨의 흔쾌한 답. 염선호 씨가 “늘 급할 때면 뛰어가서 도와드렸기 때문에 지속적인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단톡방에서 학생들이 우리 보고 ‘관악사 어벤저스’래요. 5월에도 갑자기 이태원발 확산이 터져서 달려왔어요. 의리와 믿음이 계속 이 일을 하게 한 것 같습니다.”(이가우)



2주간의 격리를 마친 학생들의 퇴거를 축하하며 파티를 열었다. 사진=관악학생생활관


(왼쪽부터) 906동 자가격리시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우명선·염선호 씨, 이가우 동문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