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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2020년 8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폐지론’, ‘이전론’…정략 도구된 서울대

관악춘추 김창균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폐지론’, ‘이전론’…정략 도구된 서울대



김창균
경제80-84
조선일보 논설주간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 폐지론이 등장한 것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태풍이 불면서였다. 처음엔 해보는 소리겠거니 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동창들 사이에서 “평등주의자들에 맞서 서울대를 지켜낼 총장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고 실제 그런 선택이 이뤄졌다. 서울대 출신 언론인 모임인 관언회가 2003년 4월 창립된 것도 서울대 폐지론 때문이었다.

2004년 5월 여론조사에서 서울대 폐지론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6.4%로 찬성 30.9%의 두 배에 가까웠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노무현 정부는 서울대 폐지론의 폐기를 공식 선언했다. 선거 때 표 좀 얻으려고 꺼낸 폐지론이 국민에게 인기가 없으니 이용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이후에도 서울대 폐지론은 5년 단위 대선 사이클이 돌아올 때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주로 진보 정당쪽에서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당내 경선에 나서는 보수 정치인들도 심심치 않게 득표 전략으로 활용했다. 명분은 늘 대학 서열화 탈피와 입시경쟁 완화다. 지방마다 있는 국립대의 고유 명칭을 없애고 프랑스처럼 1, 2, 3 대학으로 부르자는 방법론도 매번 반복된다.

서울대 이전론은 이명박 정부 때 행정복합도시 수정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부 부처를 세종시로 옮기는 대신 첨단 기업과 함께 서울대를 이전하자는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함께 무산됐던 서울대 이전론이 요즘 다시 재탕되고 있다. 수도권 집값 폭등에 당황한 집권세력이 천도론을 타개책으로 꺼내면서 서울대를 세종시로 보내자고 한다. 겉모습은 이전론이 폐지론과 비슷해 보이지만 알맹이는 딴판이다. 폐지론은 서울대의 수월성을 박탈하자는 데 목표를 둔 반면, 이전론은 서울대의 수월성을 인구 분산의 도구로 활용하자는 쪽이다. 7월말 여론조사에서 서울대 이전에 대한 반대가 54%로 찬성 30%보다 훨씬 높았다. 서울대를 정략적인 카드로 이용하는 데 대해 국민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다만 서울대를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두드리는 동네북쯤으로 여기는 풍토가 왜 생겨났느냐에 대해서는 서울대인 전체가 고민해 볼 문제다. 세계는 점점 한두 명의 뛰어난 인재가 나라를 먹여살리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서울대가 그런 인재를 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국민 모두가 인정한다면 정치권이 섣불리 서울대를 없애느니, 장기판의 졸처럼 이리저리 옮기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는 정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