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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호 2020년 7월] 뉴스 기획

신경 쓰이는 세계대학평가 순위, 문제는 재정 확보

서울대와 세계대학랭킹

신경 쓰이는 세계대학평가 순위, 문제는 재정 확보
 
서울대와 세계대학랭킹





‘2025년 입학해서 다시 온다. 2018. 05. 26 ○○○, 서울대학교 20학번 □□□ 글씨가 아닌 현실이 되어 뜻깊은 추억이 되길 2018. 10. 12,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20학번 △△△ 내년에 뵙겠습니다. 2019. 02. 05’ 서울대 정문 철제 구조물에는 이처럼 모교 입학을 꿈꾸는 초·중·고 학생들의 다짐이 빼곡히 적혀 있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서울대학교. 가리고 뽑는 데만 익숙할 것 같은 모교도 ‘수험생’의 고초를 겪는다. 세계 대학평가에서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세계대학랭킹
대학평가는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시사잡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가 자국 내 대학을 평가, 순위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순위 발표가 대중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고, 다른 많은 신문사들이 대학평가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이후 국내서도 친숙한 ‘THE 세계대학랭킹’이 영국의 신문사 ‘더 타임스’(The Times)에서 발행하는 주간지 ‘타임스 고등교육’(Times Higher Education 이하 THE)을 통해 2004년부터 집계됐고, THE와 함께 출범한 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2009년부턴 자체적으로 대학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대학이 평가 주체로 나선 사례도 있다. QS, THE와 함께 세계 3대 대학 랭킹으로 꼽히는 ‘세계대학 학술순위’(Academic Ranking of World Universities)가 중국의 상하이교통대를 통해 2003년부터 매년 발표되고 있으며,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에선 논문을 중심으로 한 ‘CWTS 라이덴 랭킹’을 발표한다. 

그밖에 유엔훈련조사연수원, 스위스 프랭클린대 테일러 연구소, 한자 대학동맹, 한국 국제경쟁력연구원 등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하는 ‘세계 혁신대학 순위’(World’s Universities with Real Impact)도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소재의 ‘세계대학 랭킹센터’(Center for World University Rankings)도 있다. 서울대학교 또한 외부 기관에 의해 끊임없이 ‘시험’을 보는 셈이다.

여정성(가정관리79-83) 모교 기획부총장에 따르면, 세계대학랭킹이 발표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서울대는 외부 평가에 그리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1·2012년 연속 THE 세계대학랭킹에서 모교가 100위권 밖에 랭크되고, 국내 언론이 이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를 쏟아내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서울대를 향한 선망과 질투의 시선이 냉소와 질타의 여론으로 바뀌었고, 동문들 또한 모교의 순위 상승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면서 모교는 여러 대응책을 내놓았다.

특히, 연구의 질적 성장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인 연구 성과 창출을 목표로 SNU Pioneer Project(연구 잠재력이 있는 신진연구자 발굴·지원), 세계선도 학문분야 중점 육성 및 지원, 융합선도형 연구 활성화 정책 등을 추진해왔으며 그 결과 THE 세계대학랭킹에서 논문 당 피인용 수 점수가 최근 6년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또한 영미권 대학이나 홍콩·싱가포르 대학 등에 견주었을 때 언어적·지리적 여건 등에서 서울대가 불리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QS 세계대학랭킹에서 매우 높은 평판도 점수를 받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문제는 국제화다. 2006년과 2010년 두 차 례에 걸쳐 추진된 국제화 사업을 통해 서울대는 2009년 40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전임교원 수를 10년 만에 105명으로 늘렸고, 1996년 100명에 그쳤던 외국인 유학생 수를 2019년 1,269명까지 유치했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진 못한 것 같다. 최근 발표된 2021 QS 세계대학랭킹에서 모교는 총점 79점으로 세계 37위에 올랐는데, 평가지표별 득점 상황을 보면 △국제 교수진(평가비중 5%) 18.6점 △유학생(5%) 11.6점으로 △학문적 평판도(40%) 97.9점 △졸업생 평판도(10%) 95.9점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해외 석학을 모교 교수로 초빙하면 국제 교수진의 강화는 물론 학문적 평판도와 논문 피인용 수 측면에서 ‘일석삼조’의 득점 효과가 기대되지만, 그에 상응하는 급여가 지급돼야 할 것이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초빙 이후에도 본인의 역량을 100% 발휘하려면 고가의 연구 장비를 비롯한 연구환경이 구축돼야 하고, 연구를 함께 할 우수한 대학원생과 그들의 생활 안정을 위한 연구비 또한 요구된다. 

2018년 기준 모교의 총 재정은 1조5,000억원. 도쿄대 2조1,020억원, 싱가포르국립대 2조7,245억원, UC버클리대 3조4,586억원 등에 비해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지금과 같은 재정 규모로는 해외 대학과 경쟁해 국민이 요구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오세정(물리71-75) 총장 취임 직후 출범한 ‘서울대 법인 재정립위원회’는 최근 가칭 ‘SNU홀딩스’를 설립해 다양한 수익사업의 전개를 제안했다. 특허 활용 벤처 투자, 공개강좌, 글로벌 교육사업 등을 펼쳐 현재 약 1,000억원 수준의 수익사업 수입을 두 배 이상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모교는 한편 서울대 발전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6년간 삼성자산운용에 기금 투자를 맡기기로 했다.


평가 기관마다 제각각 순위, 문제는 없나
모교의 QS 세계대학랭킹은 2012년 37위에서 2015년 31위까지 올랐다가 최근 발표된 2021년 순위에서 다시 37위에 랭크됐다. 대학 전반적으론 30위권에서 답보 상태지만 현대언어학 분야가 지난해 19위에서 17위로 두 계단 올랐다. 사회정책·행정학 분야가 2년 연속 14위를 지켰으며, 기계·항공·산업공학 분야가 24위에서 23위, 약학·약리학 분야가 26위에서 23위, 농·임학 분야가 31위에서 28위로 소폭 상승했다. 재료과학 21위, 화학 22위, 스포츠관련학 22위, 화학공학 25위, 전기·전자공학 29위, 치의학 29위로 20위권 내에 학문 분야가 11개로 집계됐다. 

THE 세계대학랭킹에서 모교는 2011년 109위로 진입해 2012년 124위로 물러났으나 2013년 59위, 2014년 44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2015년엔 50위, 2016년엔 85위, 2017년 72위, 2018년 74위, 2019년 63위, 올해는 64위에 랭크됐다. 총점은 68점이었고 △교육(30%) 72.3점 △연구(30%) 71.6점 △논문 인용(32.5%) 66.5점 △산학협력(2.5%) 86.6점 △국제화(5%) 35.8점을 받았다.

QS 평가와 마찬가지로 국제화 지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양자 간 순위의 편차가 눈에 띈다. 평가지표와 가중치가 서로 다르긴 해도 뿌리가 같은 두 평가기관의 랭킹에서 30계단 가까이 격차를 보인다. 그밖에 여러 대학랭킹이 있지만, 서울대에서 평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곳은 QS와 THE 두 곳뿐이다.

국내에선 THE보다 QS 평가가 더 널리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 대학의 순위가 높게 랭크되다 보니, 대학 입장에선 정부 출연금 심사를 받을 때 성과를 돋보이게 할 수 있다. 예산을 지원하는 관계 부처의 입장에서도 출연금 지원을 통해 국내 대학들이 높은 순위를 확보했다고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과 당국이 서로 ‘윈윈’하는 차원에서 QS 평가를 더 많이 인용한다. 

피평가자의 이해가 이렇듯 얽혀 있는데, 평가자의 입장이라고 마냥 순수할까. 김도연(재료70-74)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은 일찍부터 세계대학랭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김 이사장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매년 발표되는 대학랭킹을 평가기관의 ‘비즈니스’라고 지칭하면서 교육 및 연구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고려하면 “대학의 순위가 해마다 바뀔 수 없고, 바뀌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대학을 어떻게 보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고 유학을 준비 중인 세계의 학생들에게 참고 자료를 제공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내에선 대학평가의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김 이사장은 짚었다. 대학 자체의 학문적·교육적 역량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기보단 대학랭킹을 올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것. 각자의 특성과 역량에 따라 대학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평가기관의 몇몇 지표에 맞춰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 드니 굉장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2018년 서울대 재정 1조5000억
싱가포르국립대의 절반 수준
UC버클리대는 3조5000억
 
최근 QS 37위 THE 64위 랭크
“랭킹에 급급하면 긴사업 못해”
 
SNU 10-10 프로젝트 풀 가동
랭킹상승·대학발전 다 잡겠다 



김 이사장은 포항공대 총장 재임 시절 ‘THE 서밋 미팅’에 참석했던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대학 총장은 한국, 중국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대학 평가기관의 주요 비즈니스 대상이 아시아권 대학인데, 일본만 해도 대학 총장들이나 좀 신경을 쓰지 언론은 별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영미권 대학 총장은 그 회의에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21세기 들어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스라엘의 헤브루대는 2020년 QS 평가에서 162위였습니다. 같은 해 이스라엘공대는 257위였지만, 그 대학 출신이 지난 20년간 1,600여 개의 기업을 세워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죠. 이 두 학교는 대학랭킹 따위에 연연하지 않아요. 랭킹 때문에 자국민한테서 비난을 받지도 않고요. 우리 대학이 스스로 학문적 위상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 기관에 끌려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만이라도 서울대답게 그런 영향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을 해주면 좋겠어요.”

실제로 QS, THE 등 대학 평가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둘러보면 특정 대학의 배너 광고가 즐비하다. 서울대를 검색해 들어간 페이지에도 평가기관의 추천 대학 링크가 사진과 함께 표시된다. 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차치하더라도, 평가기관 또한 사기업으로서 영리활동을 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0개 학문 분야서 세계 10위권 도전
지난 4월 본격 가동한 ‘SNU 10-10 프로젝트’는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더욱 특별한 의미를 띤다. 세계대학랭킹 상승과 학문 발전이란 대학 본연의 사명, ‘두 토끼’를 동시에 노렸기 때문이다. 

SNU 10-10 프로젝트는 ‘10개 학문 분야의 세계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우수 학문 분야를 선정, 최장 6년간 최고 18억원을 지원하는 모교의 핵심 중점사업 중 하나다. 2019년 11월 사업설명회 개최 후 146일 만인 지난 4월 13일 △언어학 △행정학 △지구환경과학 △화학생물공학 △재료공학 △의과학 △치의학 등 ‘우수 학문 분야’ 7개와 △사회복지학·사회학 △정치외교학 △응용물리학 △뇌인지과학 △생명과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종양학 등 ‘잠재력을 지닌 학문 분야’ 8개를 선정했다.

지난 5월 윤의준(금속79-83) 당시 모교 연구처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가 세계대학랭킹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 전체의 발전이 더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랭킹을 올리는 데만 골몰했다면 긴 시간 사업을 기획하고 이를 심사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이미 상위권 문턱에 있는 학문 분야를 골라 지원하는 편이 훨씬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산재해 있던 모교의 연구역량을 결집시켜 학과·학부·연구소 등 조직적 차원에서 발전 로드맵을 마련하도록 독려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종 선정된 우수 학문 분야를 살펴보면, 인문대·사회대·자연대·공대 등 다양한 학과가 포진돼 있다.

언어학은 프로젝트명 ‘Initiative in Experimental and Data-driven Linguistics’를 내걸고 데이터 기반 연구 분야와의 융합 여력을 내세워 우수 학문 분야에 선정됐다. 

행정학은 프로젝트명 ‘The Global Hub of Public Value Knowledge’를 표방하며 ‘행정 한류’를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 행정이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그 우수성을 증명함에 따라 행정대학원의 위상은 물론 모교의 위상까지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지구환경과학은 프로젝트명 ‘PLANET A’를 제시했다. 차선책을 뜻하는 플랜 B에 착안, 지구는 대체 불가능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국내외의 지구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검증함으로써 신뢰할 만한 글로벌 데이터 허브를 구축, 미래 환경 재난에 대해 선제적 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재료공학은 프로젝트명 ‘Strategies for Global Top 10 Materials Science Program’를 통해 국내외 우수 박사후연구원을 유치하고, 우수 졸업생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 양방향 인적 교류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연구의 질적 측면에서 이미 세계 10위권 수준에 진입해 있어 명문 학부로서 가시적 향상을 주목표로 하고 있다. 

화학생물공학도 연구역량 면에서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프로젝트 참가 전 외부 평가를 통해 현 수준을 점검했고 피인용 및 국제적 인지도를 더욱 끌어올려 선도대학에 걸맞은 시스템 구축을 도모할 방침이다. 프로젝트명은 ‘Global Top 10 Chemical and Biological Engineering program’.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