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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2020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코로나19 백서에 낱낱이 기록하자

정연욱 동아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코로나19 백서에 낱낱이 기록하자


정연욱
공법85-89
동아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대중외교 인한 방역허점 의혹
냉철히 평가해 매뉴얼 남겨야


코로나19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어 보인다. 지역 감염으로 급반전하면서 상황 예측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의 초기 방역이 뒷북 대응으로 사태 확산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분수령은 최초 발원지로 추정되는 중국과의 관계 설정 여부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외부의 문을 열어놓은 채 국내 방역에 집중할 경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했다. 치사율은 낮지만 강한 전파력이 특징인 코로나19의 특성을 감안할 때 선제적 대응이 필요했지만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코로나19가 창궐한 원인에 대해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 탓을 하자 같은 정부의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금 단계에선 어떤 근거도 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하는 일도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시 주석의 상반기 방한 추진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중국 측 브리핑에선 시 주석 방한을 언급한 대목이 빠졌다. 이 무렵 중국은 코로나19 창궐로 당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를 연기해 시 주석 방한조차 불투명해지는 상황이었다. 시 주석 방한을 보는 한중 양국의 온도차가 감지됐다. 이 때문에 중국인 입국제한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시 주석 방한 추진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자 한국과 중국의 상황은 역전됐다. 오히려 중국의 지방정부가 중국에 입국하는 우리 국민들의 입국을 제한하고 강제 격리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일부에선 우리 교민들의 문 앞에 빨간 봉인 딱지를 붙이며 14일간 집 밖을 나오지 말라고 압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국내 여론에 떠밀려 외교부 장관이 나서 중국 측에 이 같은 ‘과도한 조치’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중국의 관영 매체는 “외교보다 방역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이 자국민 보호 명분으로 취한 조치가 문제없다는 우회적 표현이다.

우리 입장에선 중국과의 밀접한 경제, 외교적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정학적 숙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방역은 더 상위의 문제다. 전 국민의 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국익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원칙 위에서 외교적 상호주의가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일부 국가들이 단호하게 중국인들의 입국 제한조치를 단행해 방역에 성공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더욱이 코로나19의 치료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마스크 대란은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감을 키웠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로 마스크 수습 체계의 혼선은 정부 행정력의 허점을 드러냈다.

방역에 보수와 진보도, 여야(與野)도 따로 있을 수 없다. 방역의 해법을 놓고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정파적 이해관계가 끼어들어선 안 될 것이다. 국가적 위기에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의 진행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런 오해를 살 조치가 없었는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정부 대응에 대한 전체적인 진단과 평가를 해야 한다. 방역을 위한 국가 총동원체제는 의료 인력의 수준과 치료 기술을 넘어 정부의 행정 능력 등을 종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내놓을 코로나19 백서에는 정부 대응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남겨야 할 것이다. 이 기록은 언제든지 일어날 변종(變種) 바이러스의 기습에 대비해 지금 세대가 남겨줄 최고의 매뉴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