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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2019년 12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女小男大였던 40년 전 서울대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 본지 논설위원
관악춘추

女小男大였던 40년 전 서울대


김창균
경제80-84
조선일보 논설주간
본지 논설위원

올해 1학년인 서울대 19학번 장학생 선발 면접에 참가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문과계열 단과대학별 성적 최우수자들이 후보였는데 여학생들이 압도적 다수였다. 차마 숫자를 밝히기 곤란할 정도로 남학생들은 지리멸렬이었다. 각종 국가고시에서 여성이 약진하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필자가 입학한 1980년 학번의 법대, 경영대, 사회과학대 500명 신입생 중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문·이과 전체 신입생 3,000여 명중 여학생 숫자가 100명이나 됐을까 싶다. 관악캠퍼스에서 여학생이 눈에 띄는 경우가 드물 정도였다.

그래서 그때는 남자가 여자보다 생물학적으로 학업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면 무조건 서울대에 간다, 서울대 학생 중 남자 비율이 압도적이다, 그러니 남자가 여자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는 3단 논법에 의존한 결론이었다. “여자치고는 공부 잘한다”라는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성차별적 표현이 당시는 자연스럽게 통용됐다.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학업성적이 우수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40년간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여학생들의 학업능력만 차별적으로 증진되는 돌연변이 현상이라도 발생했다는 것인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학업능력의 남녀 우위가 뒤바뀐 원인은 지금이 아니라 그때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 필자 동년배중 대학진학 비율이 절반 정도라는 통계를 본 기억이 있다. 대학 입시문이 좁은 탓도 있지만 애초에 대학 문을 두드릴 만한 경제 형편이 안되는 가정도 적지 않았다. 당시 웬만한 가정의 형제 자매수는 세 명이 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정된 재원으로 아들부터 대학에 보낸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딸은 자기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시험에 합격하면 보내지만 적극적으로 진학을 뒷받침하는 가정은 소수였다. 그런가 하면 공부 잘하는 딸이 서울대 가면 시집가기 어렵다고 여대 진학을 강권하는 집안들도 있었다.

1980년대 서울대에 여학생이 드물었던 데는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또래 여학생들이 얼마나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지도 모르고 “달리기는 여자가 못 따라오지”라고 자만했던 셈이다. 만일 지금의 사회환경이 40년 전에 일찌감치 찾아왔다면 필자의 처지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절반이 넘는 여학생 동기들이 붐비는 캠퍼스에서 좀더 ‘화사한’ 학창생활을 즐겼거나 머리 좋은 여학생들에게 성적이 밀려 다른 대학교 졸업생이 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