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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2019년 8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입장과 이해관계

정연욱 동아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입장과 이해관계




정연욱
공법85-89
동아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무역보복으로 시작됐지만 사실상 지난해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관련 대응책을 둘러싼 한일 갈등이 뇌관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갈등의 기저에 깔린 실타래를 푸는 외교협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한일 갈등은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민감한 이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응하는 방향을 놓고 친일-반일 논란이 불붙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일본의 제재 조치가 몰고 올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한 모습이다. 이처럼 복잡한 상황에서 단칼에 무 자르듯이 정리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 다루기 어렵다고 손을 놓는다면 무슨 해법이 나오겠는가. 다시 불편한 현실을 응시해야 한다. 다각적인 협상채널을 가동하면서 외교협상에 나서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겨야 할 원칙들이 있다.

우선 입장(Position)과 이해관계(Interests)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의 입장에 매몰되지 말고, 각자가 정말로 원하고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협상해야 한다. 입장을 놓고 협상하면 감정이 앞선 충돌만 벌어지겠지만,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협상하면 절충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맺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은 지금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1948년 이후 이스라엘과 네 차례 중동전쟁을 벌였던 이집트의 평화 제의에 이스라엘이 화답하긴 했지만, 초기 협상은 진척이 없었다. 협상은 이스라엘이 중동 전쟁으로 이집트 영토인 시나이 반도를 점령한 상태에서 시작됐다. 양측은 땅을 원했지만 속내가 달랐다. 이집트는 원래 영토를 되찾는 것이 중요했고,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보다는 이집트가 그 땅에 주둔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상황을 더 우려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중재로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에 돌려주되,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에 군사를 배치하지 않기로 하면서 협정이 타결된 것이다.

한일 양국이 과거사의 영욕으로 얽혀 있다고 해서 영원히 파국으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조만간 진행될 외교협상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