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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2022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우영우’는 없다

김정곤 한국일보 뉴스부문장·본지 논설위원

‘우영우’는 없다



김정곤
사회87-94
한국일보 뉴스부문장·본지 논설위원


드라마 한 편이 남긴 여파는 상당했다. 탈북민과 성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천재 변호사의 맹활약은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했고,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고래를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이상향을 다시 떠올렸다. 개발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주인공이 극적으로 구해낸 팽나무는 현실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재탄생하는 기적을 낳았다. 무엇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인해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하지만 우울하게도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이나 종영된 뒤에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가족의 비극적 뉴스는 끊이지 않았다. 멀쩡하게 출근했던 여성이 근무지에서 스토킹 가해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도 발생했다. 하청·재하청의 열악한 구조 속에서 임금을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억울한 사연도 줄지 않았다. 어쩌면 현실이 해결하기 쉽지 않은 난제들이라 드라마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켰는지 모르겠다.

장애인의 현실은 특히나 괴리가 심하다. 가족과 친구의 도움으로 대학을 진학하고 그 어렵다는 변호사시험까지 통과한 장애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드라마 속 우영우는 현실에 없다. 드라마 후속으로 나온 각종 보도에 따르면 20대 발달장애 청년이 받는 장애인 연금은 월 30만원 남짓이고 발달장애인이 복지관을 이용하려면 보통 3년을 기다려야 한다. 발달장애는 조기재활치료가 중요한데 유명교수 진료에 5년을 기다려야 하고 ‘장애인 때문에 아파트가격 떨어진다’는 이웃의 비수 같은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게 장애인 가정의 현실이다.

과연 이런 복지시스템 앞에서 누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사회안전망이 숭숭 뚫린 상태에서는 경제발전이나 정치·사회혁신 모두 허상이다.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는 드라마의 감동 또한 환상에 불과하다.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선한 의지로 촘촘한 복지시스템을 구축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건강한 미래를 설계할 책임은 드라마 우영우에서 감동받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