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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2021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그래도 주권 행사를 포기할 순 없다 

정연욱 동아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그래도 주권 행사를 포기할 순 없다 



정연욱
공법85-89
동아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20대 대통령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아직까지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다는 응답자가 절반이나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번 대선 구도가 유달리 불확실하다는 방증일 게다.

무엇보다 여야 유력 대선후보들에 대한 비호감도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갤럽조사(10월 19~21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홍준표 후보의 비호감도는 60% 선에 달했다. 역대 대선과 비교해도 유력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이 정도로 호감도를 압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유력후보들의 지지율이 박스권에 갇혀 있고 확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니 부동층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여야 유력후보들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고발 사주’ 의혹 등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 사정 당국의 수사 향배에 따라 대선 판도가 요동칠 수 있으니 후보가 아닌 유권자들이 대선 정국을 걱정하는 상황이 벌어진 듯하다.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가 확정됐는데도 선출 직후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컨벤션 효과’가 실종됐고, 야당 유력후보들의 지지율이 ‘정권교체’ 여론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것도 이 때문 아니겠는가. 앞으로 대선이 본격화하면 국민들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든 안개도 걷혀 가겠지만 그동안 쌓인 정치적 불신의 그늘은 쉽게 걷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현행 대통령중심제가 이제 변곡점을 맞았다고 지적한다. 협치(協治)를 종이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제왕적’ 국정 운영과 함께 정파들의 극한 대결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주된 이유다. 물론 이런 의견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대통령제의 한계나 문제점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답답해도 눈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하고 눈 감는다고 해서 엄중한 현실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대선이 본격화되면 상대를 정조준한 네거티브 전쟁이 극심해질 것이다. 정권의 명운이 걸린 선거인만큼 온 나라가 두 쪽이 날 정도로 격렬할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때보다 편 가르기, 진영 대결이 심해진 지금 상황을 감안하면 냉정하고 차분한 경쟁을 바라는 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게 냉정한 분석에 가까울 것이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선도 비슷한 궤적을 보여 왔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세계적으로 드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산업기술과 방역, 문화 등 ‘K’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자산은 특정 정파의 치적이 아니라 온 국민이 수십 년간 온갖 시련을 헤쳐 오며 이뤄낸 성과다. 대선을 하면서 아무리 갈등과 반목이 있다고 해도 이런 엄연한 성과마저 폄훼할 일은 아니다.

대통령선거는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이라는 거함(巨艦)의 선장을 뽑는 중차대한 행사다. 선장인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국민들이 위임한 권한을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이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감시해야 하는 역할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그동안 정치권에 대한 혐오나 불신, 제도 탓만 하며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좋든 싫든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역대급 비호감도 대선이라고 해도 국민의 헌법상 권리마저 포기해선 안 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