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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2022년 6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천천히 보기, 다르게 보기

이지영 중앙일보 문화팀장·본지 논설위원

천천히 보기, 다르게 보기



이지영
약학 89-93
중앙일보 문화팀장·본지 논설위원


얼마 전 리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다르게 보기’에 다녀왔다. 90분 동안 단 두 점의 미술품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다. 

오후 6시. 미술관의 일반 관람객이 모두 퇴장한 시간, 미리 예약한 10명의 참가자들이 작품 앞에 간이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이날 감상한 작품은 송수남의 추상화 ‘묵상-나’와 스기모토 히로시의 사진 연작. 처음 만난 참가자들과 각자의 해석·소감을 나누는 동안, 작품 속 붓과 빛의 힘이 점점 가까이 느껴졌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들도 스쳐갔다. 이 작품을 거꾸로 걸어보면 어떨까, 왜 낙관을 여기에 찍었을까….

‘다르게 보기’는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슬로우 아트 운동’과 일맥상통한다. ‘천천히’ 보는 여유와 시간 투자가 있어야 자신만의 관점과 창의성으로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관람객들의 짧은 감상 시간은 미술계의 오래된 해결 과제다. 200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조사에서 관람객이 작품 한 점을 감상하는 평균 시간은 27.2초에 불과했다. 그나마 폴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등 유명 걸작 6점을 조사 대상으로 했을 때의 수치니, 덜 알려진 작품은 휙휙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얘기다. 15년 뒤인 2016년 시카고미술관 조사에서도 28.6초로, 비슷하게 나왔다. 정보·지식 습득의 효용이 있을진 몰라도 예술작품을 통해 감동을 받고 영감을 얻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다르게 보기’는 미술품 감상에만 필요한 덕목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책 ‘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을 펴낸 독일인 안톤 슐츠는 “한국만큼 순위·서열에 민감한 나라도 드물다”는 데서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를 찾았다. 다양한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든 교육에 책임을 물으면서다. 획일적 기준에 따른 줄 세우기 문화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서열을 통해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삶. 다르게 볼 줄 몰라 행복에서 멀어져버린 우리 현실이다.

나태주 시인의 히트 시 ‘풀꽃’은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다. 오래 보면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보면 아름다운 게 세상의 이치였던가. 천천히 곱씹어 생각하니 갑자기 신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