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8호 2023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승자독식 정치 바꾸는 길



승자독식 정치 바꾸는 길


김희원
인류89-93
한국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대통령이 꺼낸 중대선거구제
정치체질 개선에 자극제 되길


신년 초부터 언론들은 기획기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정치적 양극화가 얼마나 극심한지, 국민들이 얼마나 분열돼 있는지를 짚었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식사자리까지 불편해 하는 이들이 꽤 많다는 조사도 보도됐다. 원인 제공자가 대통령인지, 야당인지 그조차 팽팽하게 맞선다.

으레 그런 것이라고 넘기기엔 정도가 심각하다. 2021년 10월 퓨리서치센터가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심하거나 매우 심하다’는 응답률이 한국 90%로 가장 높았다(17개국 평균 50%). 2022년 12월 19개 선진국 조사에선 ‘SNS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응답이 77%로 미국(79%) 네덜란드(78%)에 이어 3번째였다(평균 65%).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할 만큼 국민 분열이 심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위 조사가 말하듯 SNS의 영향도 분명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 정치보복성 수사도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는 선거제도다. 소선거구제에 따라 오직 1등 득표자만 뽑는 현행 제도에선 비례대표(47명)를 제외하면 당선 기회를 거대 양당이 독점한다. 지역에 따라선 공천이 당선을 결정한다. 소수자를 대변하거나 혁신적인 제3당이 국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거대 양당은 경쟁도 타협도 필요 없고 ‘누가 더 혐오할 대상인가’를 견주면서 권력을 주고받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 전 국회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선거법을 개정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의 반영이었다. 여간해선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데도 비례 의석이나마 제3당에 유리한 제도를 만든 것은 표의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위성정당 편법으로 이 취지를 스스로 훼손한 것도 거대 양당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다시 선거법 개정이 화두가 됐다. 안 그래도 선거법 개정은 총선 1년 전, 즉 4월까지 하도록 돼 있다. 대통령의 발언 덕에 여당 반응은 호의적이고, 여야 의원들이 뜻을 함께 하는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도 있으며, 학계와 시민들의 헌법·선거법 개정 요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선거구제 하나만 바꾼다고 정치 체질이 쇄신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대적인 승자독식의 정치를 이대로 놔두는 것이 과연 옳을까. 소수 정당이 등장한다고 곧 정권을 잡는 것은 아니나 기존 정치를 변화시키는 자극제가 될 수는 있다. 그 첫걸음을 떼기를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