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26호 2022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봄, 겨울과 여름 사이의 풍요

강경희 조선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봄, 겨울과 여름 사이의 풍요



강경희 
외교84-88
조선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젊디젊은 졸업·입학생들
봄처럼 더욱 치열해지길


어느덧 입춘이다. 봄기운이 그립다 못해 절실한 것을 보니 봄은 어느새 고개만 들면 보일 만한 지근거리에 다가 와 있는 게 틀림없다. 

산수유 노란 꽃으로 시작해서는 개나리도 필 것이고 목련에 매화에 벚꽃도 가득할 것이며 문득문득 꽃잔디는 번져 가고 틈새로 언뜻언뜻 보이는 진달래며 철쭉은 실로 고울 것이다. 그 사이로는 미풍에 얹힌 봄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수다스레 지나며 흘기듯 눈길을 던질 것이다. 아마도 이제 그만 움츠려 있고 길을 나서 보라는 뜻이겠다. 

이참에 문을 활짝 열고 나가 겨울을 털어내듯 기지개를 켜고는 아침 햇살을 따라 이곳저곳 덤불을 걷어 본다. 속내를 들킨 듯이 초록의 키 작은 풀잎들이 제법 빼곡하다. 뾰로통한 얼굴의 달래랑 냉이도 있다. 결코 한가로이 겨울을 보내지는 않았다는 표정이다. 잠시 발걸음을 주춤대다 보면 나뭇가지 끄트머리마다 연녹색 꽃눈이 첫봄 앞에 궁금해 하고 있다. 

아직도 춥기만 한 겨울에 발을 딛은 채로 미리 봄풍경을 꿈꾸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고 따뜻함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다. 봄은 그만큼 풍성하고 화려하다. 심지어 봄이라는 기간은 의외로 짧고 간단하여 그 소중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봄은 겨울과 여름 사이에서만 봄이 아니다. 봄이 실로 싱그러운 것은 겨울을 기억하는 덕분이고 여름을 예비한 까닭이라고 말이다. 뿐만 아니다. 봄은 먼 훗날의 또 다른 어느 봄까지도 꿈꾸고 있기에 비로소 풍성한 것이라 한다. 새삼 봄 앞에 서 있다 보니 생각이 이어진다. 

서울대학교 캠퍼스에도 곧 봄기운은 시작될 것이다. 입춘이 지나면 입학과 시작의 분주함이 가득하고 서울대생들의 생기도 충만할 것이다. 비록 코로나가 어두운 기운을 덮었다 한들 어찌 저 청춘들의 생기를 가릴 수야 있겠는가. 청춘은 청춘이라는 말 그대로 푸르디 푸른 봄기운에 다름 아니다. 그대로가 꽃이고 연두빛 새싹이다. 곧 다가올 3월의 캠퍼스는 그대로가 축제인 셈이다. 지난 겨울의 힘겨운 추위를 견뎌내고 맞이한 봄처럼 온통 생명력이 꿈틀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서울대생들의 생기와 생명력이 진정 아름답고 풍요롭고자 한다면 봄의 표정만을 닮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겨울을 기억하고 여름을 예비할 줄 아는 두툼한 봄의 풍요를 닮아야 한다. 저들 청춘이 진정 대견한 인재이고자 한다면 이 땅의 지난한 역사도 기억해야 하고 국가의 광명한 미래 건설도 꿈꾸어야만 한다. 

책임과 역할을 가늠해 보아야 비로소 청춘은 청춘인 것이다. 입학한 것만으로 서울대생일 수 없고 졸업했다는 것만으로 서울대인일 수 없다는 말은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어느새 나이가 든 탓인가. 곧 들어올 서울대 신입생, 그리고 서울대 출신의 문패를 달고 사회에 뛰어들 졸업생 후배들을 떠올리다 보니 잔소리가 는다. 서울대인이라는 이유로 혹여 섣불리 오만해질까 염려스런 까닭이겠다. 슬그머니 한 마디를 보태본다. 

“신입생 여러분, 졸업생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해요. 그리고 미안하지만 덕담 하나 할게요. 저간의 치열함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쉼없이 새롭게 치열해지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