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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021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오징어 게임’ 속 서울대

이지영 중앙일보 문화팀장·본지 논설위원
 
‘오징어 게임’ 속 서울대

이지영
약학89-93
중앙일보 문화팀장·본지 논설위원
 
글로벌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서울대가 등장한다. 게임 참가자 456명 중 한 명인 상우(박해수 분)의 출신 학교로다.

‘오징어 게임’은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걸고 생존 게임을 펼치는 이야기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 팀장을 지낸 상우는 선물 투자에 실패해 60억원의 빚을 졌다. 고객의 돈까지 유용해 수배된 상태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모델로 한 기훈(이정재 분)의 경우 회사 이름에 ‘드래곤모터스’란 가명을 썼지만, 상우의 서울대는 실명 그대로 나온다. ‘샤’ 교문을 배경으로 찍은 졸업사진까지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2008년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황동혁 감독은 “한국 사회 마이너리티의 대표성을 띤 인물들을 등장시켰다”고 했다. 신문학과 90학번인 그의 설명에 따르면, 상우의 처지는 “1%가 99%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두가 약자, 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정이다.

극 중에서 상우는 고향 동네의 자랑이다. 한때 신동이자 수재로 불렸던 영민한 두뇌는 게임장에서도 유효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선 동작 감지장치의 맹점을 금세 파악했고, 줄다리기에서도 “세 발 앞으로 가보자”는 기발한 전략을 제안해 팀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상우의 능력 발휘는 딱 거기까지였다.

상우는 끝내 ‘을’ 신세를 못 면했다. VIP 계급이 짜놓은 게임판에서 마치 경마장의 말처럼 죽어라 달렸을 뿐이었다. 소심하고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캐릭터에서도 못 벗어난다. 어리숙한 외국인 노동자를 속이는 비겁함에 “내가 살아있는 건 내가 죽을 힘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잘난 척까지, 온기 없는 삶이 끝까지 팍팍하다. 이럴 거면 왜 서울대를…. ‘동문’ 입장에서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오징어 게임’은 양극화와 불평등. 승자독식과 계급갈등 등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어 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풍자극이다. 등장인물들의 서사는 현실에 기반한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냉철한 지성으로 포장된 이 딱한 능력주의자 상우가 우리 사회에 비친 서울대 출신의 전형이란 말인가. 흠칫 돌아보는 순간, 서늘한 긴장감이 함께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