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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호 2019년 7월] 뉴스 기획

홍석현 동문 모교 특강

“우린 군사력보다 외교력 중요한 나라…여러분 중에 뛰어난 외교관 나오길”

지난 5월 22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뒷줄 가운데)이 모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재학생 후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양일모 모교 자유전공학부장(홍 회장 오른쪽 셋째)과 이상민 부학부장(둘째)도 함께 했다. [사진=중앙일보]



“우린 군사력보다 외교력 중요한 나라…여러분 중에 뛰어난 외교관 나오길”

홍석현 동문 모교 특강


“젊은이는 꿈의 노예가 돼야 합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갈 여러분들은 꿈을 갖지 않고는 살 수 없어요.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갈 것이냐에 대해 저도 알고 여러분들도 아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갖고 풀어보려고 합니다.”

홍석현(전자공학68-72) 중앙홀딩스 회장이 지난 5월 22일 관악캠퍼스 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 ‘대한민국 100년, 2048’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모교 자유전공학부 개설 1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강연은 170여 명의 재학생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2048년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00년을 맞는 해이자, 현재 20대 초반인 재학생 후배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활동하고 있을 시기이기도 하다.

홍석현 동문은 “저와 여러분들이 세계적인 대학, 국내 최고 명문대학인 서울대에서 수학한 만큼 어느 분야에서든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보다 먼저 건전한 세계 시민이 될 것,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 것 등을 강조했다. 

홍 동문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 등 세 사람을 꼽았다.

고정관념 깨는 역발상 강조 
50년 차이에도 진솔한 대화
“건전한 세계시민이 되라”

“스티브 잡스는 사실 직접 만나진 못했습니다. 다만 1972년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 제가 지내던 기숙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차고에서 잡스가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죠. 당시 저는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긴 했지만, 학부 때 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기계에 밝았습니다. 집집마다 컴퓨터를 들인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울 때였죠. 그런데 공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스티브 잡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낸 거예요.”

홍 동문은 스티브 잡스가 글자체, 명상, 바우하우스 운동 등에 심취해 있었다고 짚으면서 그로 인해 디자인에 맞춰 기술을 구현하는 역발상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잡스가 엔지니어였다면 기술에 맞는 디자인을 추구했을 테지만 공학과 거리가 먼 심미주의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회사와도 다른 혁신적인 휴대폰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손정의 회장은 그에게 아무런 직함도 없을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젊은이가 꿈의 노예가 된다면 늙은이는 후회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인데 투자할 생각을 못했거든요(웃음). 그는 경상도 출신인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때 큐슈로 이민을 가면서 일본에 뿌리내린 재일교포 3세입니다. 무허가 판자촌에서 태어나 말 그대로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하며 자랐죠. 사업을 하려는데 일본에선 자국 내 성씨를 따라야 회사를 차릴 수 있는 거예요. 한국의 손 씨가 있을 리 없죠. 이에 손정의는 일본인 부인의 성씨를 손 씨로 바꿔 자기 성씨를 그대로 갖고 사업을 했습니다. 이 또한 역발상인 거죠.”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를 만든 인물로 2016년 홍 동문이 한국기원 총재를 맡고 있던 시절 이세돌과의 대국을 제안해왔다. 대국을 하루 앞둔 전야제에서 이세돌, 하사비스와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았던 홍 동문은 두 사람에게 대국 전망에 대해 물었다. 이세돌은 ‘5년 후라면 모를까 아직은 멀었다. 5대 0으로 제가 이긴다’며 자신만만했고, 하사비스는 첫 대국에서 알파고가 이기면 전승할 것이고 지면 전패할 것이라 전망했다. 결과는 4대 1. 알파고의 승리였다. 하사비스는 10대 초반에 영국 체스 챔피언에 오른 천재였다. 그런 그가 바둑 두는 기계 알파고를 만든 것 역시 고정관념을 뒤집는 역발상인 셈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마지막 대국 때 구글 공동설립자 래리 페이지가 왔습니다. 문명의 전환이 일어난 시점이었죠. 중국은 이를 깨닫고 AI 연구에 박차를 가해 미국과 나란히 AI 기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는 이유 중 하나도 AI 때문이죠. 스티브 잡스, 손정의, 데미스 하사비스. 세 사람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꿈을 좇았습니다.”

강연 이후엔 30여 분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어떠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냐는 질문에 홍 동문은 “우선 통합의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고 답했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친일논란이 반복되고, 종북좌파 발언이 횡행하는 세태를 꼬집으면서 “친일파의 후예와 빨갱이의 후예가 사는 나라”라도 되는 듯 갈등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홍 동문은 “미래담론이 없기 때문에 과거 이야기에만 매달리는 것 같다”며 통합의 리더십을 미래 한국의 제1 요건으로 꼽았다.

이어 그는 한반도 평화 정착 없이는 경제발전도 어렵다며 대북정책에 있어서만큼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진보·보수 간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100년, 2048’을 주제로 한 홍석현 동문의 강연에 재학생 후배 17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중앙일보]



“최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미국 상원 및 하원 외교위원장 등과 만나 의견을 들었습니다. 대체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포기 결심을 아직 안 한 것 같다고 해요. 미국 전문가들도 70~80%는 회의적이고요.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결심하지 않으면 키신저가 전망했듯 동아시아의 핵 문제로 확산될 겁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 안 하면 우리나라도, 일본도, 타이완도 핵무장을 하게 되고 세계 질서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초래될 거예요.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를 결심시키기 위해선 남한 내 합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남남통일’부터 돼야 합니다.”

홍 동문은 또 중국이라는 거대 강국이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 간 합의만으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군사력보다 외교력이 더 중요한 나라이니 “여러분들 중에서 뛰어난 외교 책사가 많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복지·평등과 관련한 사회적 담론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짚으면서 “미국보단 약간 왼쪽으로, 유럽보단 약간 오른쪽으로 가는 수준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 복지에 필요한 세율은 세율대로 조율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열심히 뛰게 해줄 때 좋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50여 년의 학번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후배 간 진솔한 대화는 계속됐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인생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내 행동의 방향은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 나는 뾰족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퉁명스러웠다. 따뜻한 얼굴과 부드러운 말투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또 하나는 제가 불교 신자라 하심(下心), 즉 겸손하려고 노력한다. 실패를 모르고 성장했기 때문에 잘 안 되긴 하지만 꾸준히 나 자신에게 당부한다.”

-전공과 분야를 바꾼 계기는.
“인생의 어느 단계에선 불가항력적으로 그 항로가 바뀐다. 조지프 캠벨이란 신화학자가 “꿈을 갖고 인생을 계획해야 하지만 살다 보면 계획된 삶을 사는 것보다 기다리고 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여러분의 나이는 평생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하기엔 참 어린 나이다. 어떤 공부를 하든 그것만 갖고 일생을 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을 바꾼 책 한 권이 있다면.
“없다. 다만 고정관념에 집착하지 말고 변화 속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키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주식이든 사랑이든 빨리 세게 빠져들고, 나올 땐 뒤도 돌아보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가장 행복했던 일은.
“행복과 불행은 늘 공존한다. 넘어졌을 때 동전 하나라도 줍고 일어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잘나갈 때 겸손하고 불행이 닥쳤을 때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나 자신보단 자식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더 기쁘더라.”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