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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2024년 8월] 뉴스 모교소식

이 세상에 식상한 대상은 없어…아무 감흥 없다면 자신을 탓해야

 
이 세상에 식상한 대상은 없어…아무 감흥 없다면 자신을 탓해야
 
심상용 (회화81-85) 모교 미술관 관장



미술관 전시 ‘미적 감각’ 연계
감각은 세계를 이해하는 창구



심상용 모교 미술관 관장이 7월 19일 ‘감각, 잃어버린 세계’를 주제로 연단에 섰다. 찰스 다윈·토마스 아퀴나스·케테 콜비츠·조지아 오키프·피티림 소로킨·시몬느 베이유 등 서양의 과학자·철학자·신학자·예술가들의 금언을 종횡으로 엮으며 예술에서 감각이 가지는 위상과 의미에 대해 웅변했다. 

이번 강연은 8월 25일까지 계속되는 모교 미술관 전시회 ‘미적 감각’의 연계 프로그램이다. 

“‘감각’에 들러붙은 부정적 인식·이미지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7세기 데카르트의 성찰론에서 중요한 기점을 맞습니다. 데카르트는 모든 감각은 틀리기 마련이며 특히 시각을 통한 이해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죠. 곧은 젓가락이 물속에 들어가면 굽어보이잖아요. 감각을 맹신하기 어렵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것인가’ 논하기 전에 ‘본질 인식을 향한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심 관장은 결핍과 부조리를 경험할 때, 타인 나아가 사회와 접촉하고 무언가를 느낄 때 본질에 다가서려는 열망이 촉발된다고 짚었다. 감각과 본질이 분리돼 있지 않다는 뜻. 그럼에도 근대 철학은 감각의 불안정성·불완전성을 지나치게 비판한 나머지 이성·합리에 매몰된 채 세워졌다. 필연적으로 감각에 부정적 인식·이미지를 덧씌웠을 뿐 아니라 감각의 고유한 세계까지 잃어버렸다. 심 관장은 이탈리아 학자 프리모 레비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성의 시대는 색을 상실한 시대다. 색을 상실한 시대는 쉽게 전체주의로 기울어진다”고 꼬집었다.

“젊은 시절 찰스 다윈은 시와 그림, 음악을 즐기면서 신비로움과 경이로움, 벅차오르는 느낌으로 가슴을 채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험과 증명’으로 대변되는 이성의 세계를 선택하고 그 안에 갇히면서 ‘내 마음은 사실들의 거대한 집합체로부터 일반적인 법칙만을 갈아내는 그런 기계가 되고 말았다’고 고백합니다. 아무리 놀라운 광경을 보더라도 예전과 같은 확신과 느낌에 사로잡히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정신적 색맹’이라고 칭하죠. 자연주의 철학, 과학과 지성의 한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이성적·객관적 성격의 과학도 감각에 시원(始原)을 두고 있다. ‘모든 지식, 인식은 먼저 감각을 통해 몸에 들어온 어떤 것들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기 때문. 감각은 그 불안정성·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창구이자 관념을 구축하는 촉수인 까닭에 현대미술에 와서 새롭게 부상했다. 오늘날의 미술은 시각을 넘어 청각·후각·촉각·미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회로 진화하고 있는 것.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요원하며, 예술가들마저 도서관에서 영감을 찾는다. 감각이 무뎌지고 퇴화한 탓에 논평, 통계, 인터뷰, 기록사진 같은 명제적 방식에 이끌린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평생 꽃을 그렸습니다. 작은 꽃을 거대하게 그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천천히 꽃을 보게 했죠. 그는 ‘나는 그저 내가 본 것을 그렸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꽃에 특별히 뭔가를 보태거나 빼지 않았다며, 자기 그림을 통해 조금이라도 대단한 어떤 것을 느꼈다면 그건 그림 때문이 아니라 꽃 자체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죠. 치열하게 삶과 세상을 탐구할 생각도 의지도 없이 그저 세상은 시시하고 권태로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는 이들에게, 너무 바빠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세계를 탐구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는 이들에게 일침이 될 것입니다.”



7월 19일 관악캠퍼스 미술관에서 심상용 미술관장이 ‘감각, 잃어버린 세계’를 주제로 강의했다.


시몬느 베이유는 ‘감각은 외부의 물리적 자극을 감지하는 것에 한정된 인식이 아니며, 이성보다 더 영혼 가까이에 있다. 기관으로서 눈은 빛을 모을 뿐 보는 것은 전적으로 뇌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말했고, 해롤드 브라운은 ‘다섯 가지 감각은 영혼으로부터 생명과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괴테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뭔가 찾으려 드는데, 사실 그들이 찾는 것은 현상 자체에 닿아 있다.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잘 보면 우리가 찾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모두 감각과 본질이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평범하고 식상한 대상이란 없습니다. 그렇게 느껴지는 건 우리의 감각이 퇴화했기 때문이죠. 바나나가 더이상 우리를 놀랍게 하지도, 마음을 흔들어놓지도 못하는 이유는 바나나에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못 느끼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생생함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삶을 사는 사람과, 무의미와 지루함 속에 사는 사람. 누군가에게 이 세계는 여전히 탐구할 가치가 있고, 탐구할수록 신이 납니다. 어느 쪽 부류의 삶을 사시겠습니까?”

심 관장에 이어 이지은 명지대 교수가 ‘감각의 미술’을, 박정태 성균관대 초빙교수가 ‘이성에서 감각으로! 이성적 사실주의에서 감각적 사실주의로!’를 주제로 연단에 올랐으며, 소프라노 고정호(성악01-05) 동문이 렉처 콘서트를 펼쳤다. ‘감각’을 주제로 한 강연답게 향수와 간식, 음료 등을 준비해 청중의 오감을 자극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