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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2019년 6월] 뉴스 기획

돌아오지 못한 당신들, 잊지 않겠습니다

모교 한국전쟁 참전자 추념 행사

돌아오지 못한 당신들, 잊지 않겠습니다

 
 

관악캠퍼스 사범대 교정 안뜰에 위치한 참전 전몰자비. 용두동 캠퍼스 시절 사범대에서 조성한 비석을 현 위치에 옮겨 왔다. 앞면엔 추도사, 뒷면엔 교육과 김명훈, 역사과 박동성의 이름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모교 한국전쟁 참전자 추념 행사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오세정 총장 등 모교 보직교수들이 6월 5일 모교 문화관 전몰비와 국립 현충원을 찾아 추념 행사를 가졌다. 국립대학으로 오랫동안 가져온 의례다.
 
관악캠퍼스 문화관 대강당 로비 벽면엔 ‘서울대학교 재학생 한국전쟁 참전 전몰자비’가 설치돼 있다. 1996년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됐으며, 2010년 6·25전쟁 발발 60주기 때 전몰 재학생 이름 일부가 추가됐다. 모교 총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교수들이 매년 국립현충원 참배에 앞서 이곳을 찾아와 묵념을 올린다. IBK커뮤니케이션 센터 2층 서울대 홍보관에도 문화관 추모비에 새겨진 전몰 재학생들의 이름이 있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에서 희생한 동문들의 이름도 나란히 기록됐다. 사범대 교정엔 용두동 캠퍼스 시절 조성했던 전몰자 추모비도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2017년 11월엔 자유전공학부 주최로 ‘서울대 전몰동문 및 참전동문 스토리텔링 발표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여러 학과의 재학생 10명이 잘 알려지지 않은 참전 동문 7인의 이야기를 발굴해 선보였다. 재학생들은 수개월간 관련 기록을 찾고 유족과 직접 만났으며, 국립현충원과 전쟁기념관, 동숭동 서울대 유적지를 방문해 전몰 동문들의 묘소를 참배하고 1박 2일 일정으로 철원 일대 전적지를 돌아봤다.
 
연건캠퍼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인근엔 현충탑이 세워져 있다. ‘이름 모를 자유 전사의 비’로 불리는 이 탑은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학살당한 환자 및 환자 가족, 군인, 의사, 간호사 등 1,000여 명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963년 건립됐다. 매년 6월 모교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과 보훈단체 회원들이 찾아와 추모제를 연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5일 오세정 총장 등 모교 보직자들이 모교 문화관 전몰비 앞에서 추모 행사를 가졌다. 문화관 전몰비에는 모교 재학 중 참전해 전사한 29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사진=모교 홍보팀]

 

계속 확인되는 전몰자…통합 추모공간 아쉽다

 

 

모교는 외국인 참전용사의 후손이 서울대에 진학하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학부생은 최대 4년, 대학원생은 2년까지 학업 기간 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5명 내외로 선발하며, 한국전쟁 참전 UN연합국 후손의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전쟁기념재단’에서 생활비까지 후원한다.

이처럼 모교는 한국전쟁 전몰동문과 참전용사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와 감사의 예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IBK커뮤니케이션 센터의 기념공간은 성인 한 명이 그냥 지나가기에도 비좁은 구석 벽면에 조성돼 있고, 문화관 대강당의 전몰비는 추가로 발굴된 재학생 전몰자만 10명이 넘지만 이들의 이름은 캠퍼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강당 전몰비 제작을 주도했던 홍두승(사회68-72) 모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김영도(철학48-56) 동문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김 동문의 친구 김종우(공대) 동문과 동생 김영식(상대) 동문도 모교 재학 중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지만, 전몰비 명단에선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 것. 김영도 동문은 홍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 깨끗이 마련된 문화관의 기념물에 추가하긴 어렵겠지만 후일 뒤늦게 알게 된 전몰 학생 명단이 정리되는 일이 있다면 참고해달라”며 농대생 김명철 동문까지 3명의 재학생 전몰자를 제보해왔다.


추가 발굴 전몰동문 미기재

기존 추모 기념공간 좁아

재학생이 참전 동문 발굴도

외국 참전용사 후손엔 장학금


홍두승 교수는 전사 확인된 재학생 이순택(농대)·한진영(문리대) 동문과 전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 재학생 김성건(법대)·나병서(법대) 동문, 사대 2학년을 다니다 육사 8기로 임관한 심 일 동문 등을 추가 발굴했다. 모교 학사과에서도 학도병 전사자 자료와 비교해 구본우(문리대)·우원덕(문리대)·조성관(문리대)·노갑병(법대) 동문 등의 학적을 확인했다.

서안희(간호63-67) 동문은 다정한 큰오빠 서찬식(약대) 동문이 재학 중 참전해 전사했다며 본회에 절절한 사연을 보내오기도 했다. <본지 2015년 6월호 4~5면 참조>

중퇴자와 실종자를 제외해도 전몰비에 이름이 없는 재학생 전몰자만 12명이며, 실제 순국 동문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 교수는 향후 전개될 추모사업에 대해 “어떠한 형식이라도 좋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미 완성된 전몰비에 자꾸 손을 대는 것보단 인근에 추모공간을 마련해 추가 발굴될 때마다 명단에 이름을 더함으로써 전몰 동문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은 물론 생존 유가족들의 아픔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BK커뮤니케이션센터 2층 서울대홍보관 한쪽 구석에 조성된 한국전쟁 참전 전몰 재학생 추모공간.


“전몰비는 오석(烏石)에 이름을 새겼지만, 동판이나 목판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비가 아닌 조형물로 건립될 수도 있죠. 연구공원 본관 로비의 발전기금 기부 동문 명패처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우선 공간 마련이 시급하죠. 대강당 로비에서 중강당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기념홀로 만들자고 학교 측에 제안했는데 아직 답이 없네요.”

홍 교수는 순국선열에 대한 추모사업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조국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느끼며 살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면 그와 같이 대우받고 기려질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물이 된다는 것. 그는 앞으로 한국전쟁 및 재학생에 국한되지 않고 베트남전 순국 동문까지 찾아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육군본부가 1994년 출간한 ‘학도의용군’에서 모교의 전신 중 하나인 수원농대 졸업생 김희균 동문을 찾아내기도 했다.

한편 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2015년 발간한 ‘지역별, 학교별, 주요 전투별 호국영웅 발굴 및 선양방안 연구’보고서에도 모교의 전신 중 하나인 경성법학전문학교 출신 전몰자가 등재돼 있다. 1944년 졸업 후 군사영어학교에 입교, 1946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함준호 동문. 그는 6·25전쟁 발발 이틀만인 6월 27일 전사했으며, 1951년 육군 준장으로 추서됐다.

나경태 기자

 

·기록관에 남은 전몰 재학생 자료

모교 기록관은 한국전쟁 재학생 전몰자 일부의 편지와 입학통지서, 사진, 수첩 등을 소장하고 있다.

① 권석홍(섬유공학 3학년 참전) 동문은 입대 전 남긴 편지에서 ‘운명을 개척해 복 가지고 돌아오겠다’고 의연히 말하면서도 부모의 은혜를 갚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② 1950년 5월 24일 모교 합격통지서를 받아든 문창열(건축공학 1학년 참전) 동문은 새내기 생활을 다 즐기지 못하고 전장으로 향해야 했다.

③·④ 가정을 꾸렸던 김세환(국어국문 1학년 참전) 동문은 급박한 전황 속에서도 인편으로 편지를 보내 아내와 딸에게 안부를 전했다. ‘서울도 탈환됐으니 포로가 된 매형도 돌아가야 할 텐데’라며 애틋한 걱정을 남겼다.

⑤ 송득규(약학 3학년 참전) 동문의 기록은 전사확인증 등으로만 남아 있다.

기록관에 보관된 것은 아니지만 서안희(간호63-67) 동문이 보내온 오빠 서찬식(약학 2학년 참전)의 편지도 남아 있다. 꿈 많고 영민한 청년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 안타깝다.
[사진=모교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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