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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호 2019년 4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전경하 서울신문 경제부장 칼럼

상대적 박탈감에 대하여
느티나무 칼럼

상대적 박탈감에 대하여


전경하
독어교육87-91
서울신문 경제부장
본지 논설위원

김의겸 청와대 전 대변인의 상가 투자에 대한 본인 설명은 상대적 박탈감의 대표적 사례다. 30년 교직생활을 한 아내와 본인의 연금은 합해서 월 400만원 수준일 테고 사퇴 전 김 전 대변인의 연봉은 1억원 정도다. 거기에 전세금 4억8,000만원. 그래도 ‘결혼 이후 30년 가까이 집이 없이 전세’로 포장됐다. 4억8,000만원이면 서울에서도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많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연봉이 4,620만원 이상이면 임금근로자 상위 30%에 속한다. 억대 연봉이 언론에 자주 나오지만 그건 월급쟁이의 4.0%다. 물론 월급이 아닌 부동산 임대료나 금융소득으로만 수천만원 이상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더해도 억대 연봉자는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 속한다.

서울대는 물론 소위 ‘스카이’ 졸업생이면 사회적으로 가진 자에 해당할 확률이 높다. 주변에 억대 연봉들도 많다. 내 주변에서 그 정도 버는데 나는 그만큼 못 버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적게 벌 뿐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도, 행여 사회적 약자라고 느꼈어도 그 느낌을 주변에 강요하면 욕만 먹는다.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고.

로마 시대 카이사르가 한 말 중에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이 있다. 살다보면 더 갖고 싶고, 더 편하게 살고 싶다. 그러다보니 나보다 더 가진 사람, 특히 정당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잘사는 사람들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일 적게 하고 돈 많이 번다면 그것은 참 부러운 일일 테니까 말이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하려면, 자신보다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래도 자신의 위치와 주변 세상에 대한 판단은 사회 전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많이 가졌을수록, 많이 배웠을수록 세상을 자신의 눈높이뿐만 아니라 위아래도 봐야한다. 그게 가진 자, 배운 자의 사회적 의무의 시작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재산과 지식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시스템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그렇게 못 보겠다면, 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공공의 자리나 권력을 탐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간 인생이 꼬여도 단단히 꼬이고 주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