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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2019년 2월] 뉴스 모교소식

제27대 오세정 총장 취임

“서울대 구성원들,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27대 오세정 총장 취임
“서울대 구성원들,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난 2월 8일 열린 모교 제27대 총장 취임식에서 오세정 신임 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지금 서울대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위한 혁신을 이행해나갈 용기와 추진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8일 모교 제27대 총장에 오세정(물리71-75)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가 취임했다.

이날 관악캠퍼스 문화관 중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은 모교가 오랜 총장 공석 상태였음을 감안한 오 총장의 뜻에 따라 관례였던 외빈 초청 없이 내부 행사로 간소하게 진행됐다. 본회 신수정 회장을 비롯해 모교 이현재·조완규·선우중호·이기준·정운찬·이장무·오연천·성낙인 전임 총장과 박찬욱 전 총장직무대리 교육부총장, 이준구 모교 이사장, 모교 보직교수와 재학생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오 총장은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위기론을 말하는 것은 서울대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외부 여건을 탓하기보다 자성이 필요하다”고 취임사의 운을 뗐다. “혁신을 통해 좋은 대학에 대한 통념을 바꾸어 나갈 것”이라며 교육, 연구 등의 공공성을 강화해 국민의 염원에 부응할 것을 내세웠다. 구성원들에게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하며 “서울대 구성원에겐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를 변모, 발전시켜 나가는 능력이 있다”는 독려를 잊지 않았다. <하단 취임사 참조>

이어 축사에서 이현재 전 총장(본회 고문)은 “오 총장은 탁월한 연구 업적과 교육자로서 경력을 축적하고 엄격한 검증을 거친 적격자”라며 “대학은 비판정신이 왕성한 지성의 집단이기 때문에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하기 쉽지 않겠지만 경청을 거듭하면 반드시 의견을 수렴할 길이 열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본회 신수정 회장은 “모교 발전이 조국의 발전이란 생각으로 40만 동문의 단합과 참여, 헌신을 외쳐온 서울대인으로서 총장님께 거는 기대가 크다”며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갖추고 계신 만큼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대학으로 모교를 이끌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날 박찬욱 전 총장직무대리 교육부총장이 오 총장에게 모교 상징열쇠를 전달했으며, 학생 대표로 총학생회 도정근 회장과 김다민 부회장, 직원 대표로 박송이 씨가 꽃다발을 증정했다.

오 총장은 물리학과 출신 최초의 모교 총장이다. 모교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84년부터 32년간 모교 교수로 재직했다. 모교 자연대학장,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초대 기초과학연구원장, 제20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오 총장은 지난 2월 1일 교내 4·19 기념탑에 참배하는 것으로 4년 임기의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박수진 기자



▽관련기사: 제27대 오세정 총장 체제 출범-부총장단 등 보직교수 임명





오세정 총장 취임사

“낯설고 불편한 변화, 당장 시작하겠다”


우리 학교는 올해 개교 73주년을 맞습니다. 서울대는 그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을 이끈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쌓는 것이 새 총장의 임무일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대학을 둘러싼 여건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위기론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언급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서울대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서울대의 사명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노력과 결과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외부 여건을 탓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자성(自省)이 먼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선 대학은 무엇보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안으로는 지성이 꽃을 피우고 밖으로는 그 지성의 힘이 뻗어 나가 주변을 이롭게 하는 터전이자 공동체가 바로 대학인 것입니다. 특히 사회가 혼돈과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대학이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구현하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를 우리 국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대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지성이 모인 곳으로서 인류의 지적 유산에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만의 이익이 아닌 사회 전체의 안녕을 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 왔는지, 진솔하게 자문(自問)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성의 권위를 뿌리부터 흔드는 부적절한 행위들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은 교육과 연구라는 두 날개를 통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과거 서울대는 국가와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시의적절하게 양성해 왔습니다. 선진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수하여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압축 성장 시대에 적절했던 이런 교육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따라가기보다는 앞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답을 오차 없이 받아쓰는 모방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 꽃피는 독창성과 사유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대학이 길러내는 인재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새로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학문의 벽에 갇혀있기보다는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미래의 지도자는 타인과 공동체를 두루 살피는 넓은 시야와 따뜻한 마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협동심이 있어야 합니다. 즉 새로운 길을 가고, 함께 갈 줄 아는 인재가 되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의 교육은 이러한 인재를 키우기 위한 혁신의 도정(道程)에 나설 것입니다.

그러한 혁신을 통해, 좋은 대학에 대한 통념을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단지 경쟁에 뛰어난 준비된 인재를 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사회 곳곳으로부터 잠재력 있는 인재들을 선발하여 서울대학교에서 그 잠재력을 꽃피우도록 하겠습니다. 잘 준비된 학생을 뽑으려는 대학 간의 경쟁이라는 현재의 교육 풍토에서 벗어나, 입학한 학생들을 충실히 잘 가르치라는 국민의 염원에 좀 더 부응하겠습니다. 좋은 대학이란, 뛰어난 학생을 잘 뽑는 대학이 아니라 잘 가르쳐 뛰어난 인재를 만드는 대학이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의 연구 수준은 이제 양적으로는 세계 어떤 대학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선도하는 연구, 질적으로 탁월한 연구는 아직 부족합니다. 이제는 기존 분야에서 양적으로 많은 업적을 내는 것보다, 새로운 분야를 여는 근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연구가 필요한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 긴 호흡을 가지고 담대한 도전을 해야 합니다. 논문의 숫자나 인용횟수를 세는 계량적인 평가의 틀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연구가 서울대에서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동 연구를 통해 저출산 고령화, 에너지 환경, 디지털 혁신이 가져올 일자리 문제 등 한국 사회와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낼 수 있도록 격려, 지원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대학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대학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서울대가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 국내외에서 존경받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대학으로 거듭나려면, 이제까지의 관행을 좇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근본적인 혁신을 하겠다는 각오를 구성원 모두가 다져야 합니다.

사실 대학의 혁신은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최근의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은 이러한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인구절벽시대와 마주한 우리나라는 고등교육 생태계의 변화가 시급합니다. 서울대는 한국의 대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변화를 주도해야 할 것입니다.

변화는 낯섦과 불편함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낯섦과 불편함이 서울대가 다시금 국민의 신뢰와 인정을 얻기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것을 우리 구성원들이 잘 받아들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서울대 구성원에게는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를 변모, 발전시켜나가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진취적인 자세 속에서 낯섦과 불편함은 발전을 위한 자극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꺼이 직면하고자 하는 이 도전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최고의 교수, 학생, 직원이 모여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도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개교 당시를 돌이켜 보면 우리가 지금 여기 서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서울대학교 또한 불가능해 보이던 많은 어려움들을 극복해온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 서울대학교에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위한 혁신을 이행해나갈 용기와 추진력입니다. 이제 함께 힘을 모아 서울대학교가 명실상부하게 구성원이 자부심을 느끼는 대학,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학, 세계가 존경하는 대학이 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일은 100일 안에 끝날 일도 아니고, 1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제 임기 내 완성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합니다.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 오세정은 오늘 시작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4년간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개인 오세정은 미약하지만 제27대 총장으로서 제 다짐은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다짐 뒤에는 여러분과 서울대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같이 첫발을 내디디며, 서울대의 새로운 도약을 함께 기약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