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7호 2022년 1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임기 마치는 오세정 총장 “창의력·문제해결능력 있는 융합형 인재 양성에 힘썼다”


“창의력·문제해결능력 있는 융합형 인재 양성에 힘썼다”

임기 마치는 오세정 (물리71-75) 총장



학과 간 벽 낮추고 복수전공 확대
법인화법 개정해 면세 지위 확보
국가미래전략원·문화예술원 설립
방시혁 의장 모셔 졸업식 축사
“평창 시니어 타운…잘 될 것”
총장선출제 외부인사에 턱 낮춰야
바깥에선 서울대 보는 눈 냉랭
“엘리트 의식 못잖게 책임감 중요”


오세정 총장이 내년 1월 말 4년의 임기를 마친다. 임기 중 절반을 코로나로 보냈지만, 서울대의 발전을 위해 크고 작은 성과를 이뤄냈다. QS세계대학평가에서도 29위를 차지하면서 처음으로 30위권 내에 안착시켰다. 무엇보다 서울대 중장기발전계획을 분야별로 수립해 미래 청사진을 마련한 것은 평가할 대목이다. 국회와 정부를 설득, 법인화법을 개정해 매년 100억~200억원이 지출될 뻔했던 지방세를 면세한 것도 큰 성과다. 외형적으로 볼 때 서울대 정문 광장, 본관 잔디 광장을 탈바꿈 시켰고, 문화관 재건축 예산도 확보했다. 지난 12월 5일 관악캠퍼스 행정관 집무실에서 본지 이경형 편집인이 오세정 총장을 만나 4년간의 소회와 서울대의 과제에 대해 물어봤다.



-4년간의 소회를 들려주십시오.
“저는 지난 50년 동안 서울대와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드디어 서울대 생활이 끝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난 4년을 돌이켜보면, 2년 반은 코로나 때문에 대외 활동을 많이 못하고, 정상화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대학 교육이 수요자인 학생 위주로 흘러가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대학 교육이 공급자 위주로, 교수 위주로 흘러왔죠. 학생들에게 선택권도 주고 넓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실행되기는 쉽지 않았지만, 학과 간 장벽을 낮추고 복수 전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했습니다. 팬데믹 동안에 배운 것도 많이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온라인 교육을 서로 부담스러워 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온라인 교육이 자리 잡으면서 수강 신청 시 공간 제약 문제가 해결된 점이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고요. 온라인, 오프라인 하이브리드로 진행이 가능해져서 800~900명까지 들을 수 있는 강의를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서울대 총장은 어떤 자리라고 생각되시나요.
“과거 서울대 총장은 지성의 상징, 대표라는 분위기가 강했죠. 지금은 신문에서도 전혀 그런 얘기를 안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면서 서울대 총장뿐 아니라 대학 총장을 경영자, 돈을 많이 모아오는 사람 이렇게 보는 경향이 커진 것 같습니다. 서울대의 경우 다른 대학에 영향을 미치니까, 뭔가를 결정하더라도 사회의 관심이 크고, 우리도 뭔가를 결정할 때 숙고하게 됩니다. 어떤 사안이 나왔을 때, 한국의 대학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4년 전 후보 시절 여러 공약을 하셨는데, 공약 이행에 대해 자평을 해주십시오. 서울대법인화법 개정을 통해 면세 지위를 다시 찾은 것은 큰 성과라 보는데요.
“(2019년)2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했는데, 1월에 대법원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판결이 난 거예요. 그 전까지는 서울대는 당연히 면세겠지 생각하고 세무서에서도 그냥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수년전에 수원 세무서가 세금을 물렸는데 우리는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재판을 걸었고. 그런데 마지막 재판에 진 거죠. 그렇게 되니까 서울시에서도 나오고, 여기저기서 세금을 얼마 매겨야 되나 조사를 하더라고요. 이거 가만두면 매년 100억~200억원이 나가게 생겼어요.
또 시흥캠퍼스 소유권이 넘어와야 하는데 그럼 취득세만 해도 몇 백억인 거죠. 정부로부터 출연금을 받아서 지방세 내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교육부에, 일본 도쿄대는 법인화 하면서 면세 조항을 다 넣었는데 우리도 그렇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이라도 개정해 달라 했더니 힘이 없어 못 한다는 겁니다. 제가 국회의원을 하다 나온 지 얼마 안 됐고, 국회 시스템을 알아서 1대1로 의원들을 만났어요. 기재부, 행안부 관계자들도요. 전 구성원이 전방위 노력을 해서 결국 면세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 국가미래전략원도 공약 중 하나였죠?
“우리나라에 믿을 만한 싱크탱크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KDI를 싱크탱크라 볼 수 있지만 정부 기관이라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고, 삼성에서 경제연구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거기 역시 객관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학교는 각계 전문가도 많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 우리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사회과학대학에 연구소들이 많이 있었고, 대학본부 차원의 국가정책포럼이 유지되고 있었어요. 그걸 연장하면서 본부 산하로 두는 국가미래전략원을 신설했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님을 명예원장으로 모시고요.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문화예술원을 만들었습니다. 취임 첫 해 졸업식 축사 연사로 방시혁 의장을 불렀거든요. 고사하는 걸 설득해 단상에 모셨습니다. 서울대도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중문화예술계 인물들과 교류해야 하고, 그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지였죠. 서울대도 대중문화를 지원하고 연구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융합형 인재 양성에 관심을 쏟으셨다고 하셨는데, 인재 양성의 방향이라면.
“지금까지 교육은 산업시대의 일꾼을 양성하는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죠. 해당 전공 분야의 지식을 많이 가르쳐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만드는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전공 필수 과목도 많았고요. 앞으로 사회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으로 써먹을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짧아요, 융합적인 것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전공 벽에 갇혀 그 분야만 깊게 파기보다는 좀 넓게 보고 이것저것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학과 위주의 제도를 깨야 하는데 서울대가 무전공으로 뽑기는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보호 학문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은 일단은 과를 선택해서 입학하더라도,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미 약 3분의 1 정도 학생들은 졸업할 때 복수전공·부전공을 하고 나갑니다. 앞으로 그 수를 3분의 2 정도로 하려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공지원설계센터를 만들어서 어려움 없이 복수전공을 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학과에도 전공 필수 과목을 줄이고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물리학과에 들어왔지만 인문, 예술과도 접점을 찾는 인재로 커나갈 수 있도록 해야죠.”

-입시 전형이 복잡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학생 선발 제도에 대해 서울대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총장 취임하면서 제일 신경 썼던 게 입시제도입니다. 알다시피 서울대 입시가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큰 영향을 주니까요. 이걸 잘 바꾸면 중·고등학교 교육도 바뀔 거고요. 하지만 교육부가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해서 바꾸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큰 틀은 놔두고 작은 틀 안에서 바꾸려다 보니 꼬이기도 하고요. 정시 40% 해라? 사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정시를 늘리면 기본적으로 수능을 강조하게 되는데, 수능이란 게 반복 훈련하면 올라가는 시험이거든요. 중·고등학교 공교육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생각해 정시 모집에서도 학생부 기록을 보겠다 하니 야단이 납니다.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하는 일인데도 어렵습니다.
수능 시험이 의미 있는 시험이라면, 그것 때문에 고생하는 것도 이해를 하겠는데, 그냥 주어진 지식을 틀리지 않고 토해내는 시험이잖아요. 앞으로는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 이런 게 중요하죠. 그다음 서로 협조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한 건데, 지금은 내신도 전부 다 상대평가니까 친구가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서울대 혼자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예요. 큰 변혁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기숙 대학 RC(Residential College)를 도입한다고 들었습니다.
“RC가 왜 중요하냐면, 앞서 얘기한 대로 대학이 지식만 배우는 거라면 집에 있어도 되지만, 서로 만나 얘기하고 아이디어 얻고, 또 전공이 다른 친구들과 교류하면 보는 시각이 넓어지니까 그런 면에서 중요하거든요. 또 요즘 학생들이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연세대 송도캠퍼스 RC를 보면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마침 관악캠퍼스에 오래된 기숙사 여섯 동이 리모델링 할 때가 됐어요. 공간을 늘리면 1학년 학생은 충분히 RC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음 학기부터 한 개 동에 1학년 중 신청자를 받아 시범 사업을 합니다.”



대담 : 이경형 (사회66-70) 본지 편집인



-서울대 1년 예산이 1조1000억원 수준인데, 이 중 50% 정도가 정부 출연금입니다. 정부 출연금은 계속 늘릴 수는 없어 보입니다. 어떻게 재정을 늘려야 할까요.
“정부 출연금은 제가 4년 동안 거의 1000억원 올렸습니다. 계속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 나름대로 뭔가 하려면 ‘꼬리표’ 없는 돈이 필요한데, 발전기금을 늘리거나 산학협력을 통해 자체 수익을 올려야 합니다. 사실 발전기금도 대부분 용도가 정해져 있어 운용하기 쉽지 않습니다. 산학협력단이 보유한 특허에서 나오는 수익과 SNU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얻는 수익이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이 될겁니다.”

-총동창회에서 지난 6월 평창캠퍼스를, 11월에는 시흥캠퍼스를 다녀왔습니다. 이 두 캠퍼스를 잘 활용하면 재정 확충이나 대학의 지역사회 공헌 등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시흥은 병원이 들어오면 바이오메디컬 벤처타운이 형성될 겁니다. 관악캠퍼스가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기 어려운 실험들, 가령 무인이동체 실험들이 시흥에서 가능합니다. 시흥은 공학과 의학 위주의 캠퍼스로 자리매김할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에 평창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질 것으로 봅니다. 이 둘은 서울대의 미래를 위해서 엄청나게 큰 자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총동창회에서 추진하는 ‘평창 시니어타운’ 계획이 지자체장이 바뀌고, 강원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고, 서울대병원장이 사실상 공석이 되면서 정체돼 있지만 언젠가 실현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상황에 따라서 빨라지기도 늦어지기도 하는데, 저는 결국은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 총장 선출 제도에서 외부 인사의 후보 진입이 어렵다든가, 총장 연임이 사실상 제한됐다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총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총장 선거 규정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임기가 끝날 때 하면 후보자들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복잡해지기 때문에 오자마자 바꿨거든요. 그때 외부 초빙인 한 사람은 무조건 (총장후보로 등록한 인사들 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5인 후보그룹에 넣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또 지금은 총장 연임 제도도 6개월 전에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총장은 결정될 때까지 직무 대행을 두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도 보통 그렇게 하거든요. 실제적으로 다음 총장부터는 연임이 가능하도록 한 겁니다. 지금 평의원회에 개정 문건이 가 있는데 통과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치할 생각이 또 있으신가요.
“정치가 싫어서 나왔는데(웃음). 물론 국회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지요. 기억나는 것 하나가 처음 국회에 갔을 때 서울대 얘기하면 반응이 그렇게 냉랭할 수가 없어요. 이게 일반 사람들이 바라보는 서울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점점 정부 예산 받는 게 어려워지겠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제가 서울대와 서울대인의 공공성을 자주 언급하는 이유가 정부에서 받는 돈이 있고 사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그 자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학의 학풍이라는 게 있잖아요. 같이 다니다 보면 몸에 배는 게 있을 거잖아요. 엘리트 의식 같은 것이죠. 거기에 따라서 책임감도 느껴야 하죠. 엘리트 의식만 몸에 배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돼요. 앞으로 그런 분들은 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정리=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