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89호 2018년 1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선의의 역설

정연욱 채널A보도본부 부본부장·본지 논설위원

선의의 역설


정연욱

공법85-89
채널A보도본부 부본부장·본지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철폐를 역설했다. 이후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었다. 그만큼 구호는 화려했고, 선명했다.

현실은 어떨까. 성적표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정책 때문에 오히려 전체 고용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비정규직 사용 규제가 기업의 고용 결정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중이 다른 사업장보다 10%포인트 높았던 기업들의 경우 기간제, 파견 근로자를 2년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전체 고용 규모가 3.2% 줄었다. 대신 비정규직 고용은 10.1% 증가했다. 법 적용을 받지 않는 용역, 도급을 늘리면서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나빠진 것이다.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법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용역, 도급 등 비정규직 증가 폭이 두 배나 컸다.

약자(弱子) 보호 정책이 선의(善意)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곳곳에서 역효과를 내고 있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 자영업자가 직격탄을 맞아 줄줄이 폐업하는 일이 벌어졌다.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특수고용직에 고용보험 등 4대 보험 적용을 의무화할 경우 보험설계사 16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보험사 등이 설계사 조직 유지에 드는 비용 부담을 꺼려 실적이 낮은 설계사부터 계약 해지에 나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선의로 시작한 행동이 역효과를 낳을 때 정치가들은 “세상이 어리석고 비열하지”라고 세상 탓을 한다고 갈파했다.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는 누굴 탓하기보다 결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선의만으로 현실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집권 2년차 터널을 지나가는 문재인 정부가 새겨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