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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2018년 1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 '다양성'의 현주소

김영희 한겨레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 '다양성'의 현주소




김영희

고고미술사88-92 한겨레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올초 롯데그룹의 첫 여성 CEO 탄생 소식이 화제였다. 2004년 신동빈 부회장이 취임하며 당장 여성 임원을 발탁하라고 내린 지시가 CEO 탄생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훈훈한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하늘 같은오너 총수가 나서고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14년이나 걸렸다는 현실이 한편으론 더 크게 다가왔다.


발탁하려 해도 인력 풀이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여성간부는 늘어요.”


지난 10여 년 한국의 낮은 유리천장 지수가 언급될 때마다 지겹도록 듣던 말이다. 물론 삼성의 사원 연수원 건물에 여자 화장실이 없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던 때를 생각하면 분명 격세지감이다. 여전히 은밀한성별 쿼터제를 실시하는 곳이 적잖지만, 한겨레를 포함한 몇몇 언론사는 한 기수에 남자가 몇 명이냐가 화제가 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금 신입사원의 여성 비율이 간부가 되고 임원이 되고 CEO가 될 때까지 어느 정도나 유지될까.


여성의 출산, 육아만이 걸림돌이 아니다. 남성중심의 조직문화가 여성인력들을 제대로평가할 수 있느냐가 앞으론 점점 더 관건이 될 것이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몇해 전 저서 린인(Lean In)에서 한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하이디 로이즌이라는 성공한 기업인 사례를 한 그룹엔 원래 이름으로, 다른 그룹엔 하워드라는 남성 이름으로 바꿔 제시했다. 평가는 모두 유능했지만, 하워드는 인간적으로 좀더 매력적이라고 보는 반면 하이디는 이기적이고 함께 일하고 싶은 유형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왔다. 남성일 땐 야심인 덕목이 여성일 땐 욕심으로 비치는 경우, 우리들의 일터에도 과연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얼마 전 2017년 서울대 다양성 보고서를 받아봤다. 서울대가 총장 직속으로 설치해 각계의 주목을 받았던 다양성위원회의 두 번째 연간 보고서다. 주요보직 교원 96명 중 여성 비율은 10.4%로 전년에 비해 뒷걸음질쳤다. 평의원회를 비롯해 주요위원회의 여성 비율은 다양성위를 제외하면 중앙정부 위원회 평균에 대부분 한참 못 미친다. 여성교수 자체가 적은 탓이 클 게다. 그런데 여성인재나 리더는 기다린다고 탄생하는 게 아니다. 노르웨이가 2002년 공기업 이사회의 여성비율을 40%로 올리는 강제규정을 도입할 때 이대로 둔다면 40%까지 200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새 총장이 학교의사결정구조의 다양성 강화를 위해 과감한 발상에 나서길 바란다. 몇 년 뒤 서울대 총장선거에 여성 출마같은 기사를 볼 날도 상상해본다. 이런 게 서울대가 사회에 미쳐야 할 진짜 영향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