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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2018년 7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북핵 두뇌들에게 ‘평화 원전’ 맛보게 하자

전영기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북핵 두뇌들에게 ‘평화 원전’ 맛보게 하자


전영기
정치80-84
중앙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신화가 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양이 늑대들과 같이 뛰놀며 어린 아이가 사자의 입에 손을 넣는 낙원의 풍경이다. 지금 한국과 북한,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선의와 신뢰’라는 환상적 방법론으로 진행되고 있다.

역사상 국가와 국가 간 모든 군사 협상이 ‘힘과 조건’으로 결판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재인 정부의 접근법은 신화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국정의 운전대를 이 정부가 잡고 있고, 무슨 마법처럼 트럼프와 김정은이 신화적 로드맵을 따라오고 있으니 마냥 팔짱만 끼고 있는 것도 국민된 도리가 아닐 것이다.

해서 문 대통령식 접근법을 구체화하는 차원에서 ‘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 게 헌 집 다오’라는 어린 시절 누구나 경험했을 모래 장난식 모델을 고안해 소개한다. 신화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마당에 이 정도 동화적 방법론을 상상 못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새 집(원자력 발전소·Nuclear power plant )을 지어줄 테니 김정은 당신은 헌 집(핵무기 체계·Nuclear weapon system)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새 집을 제공하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협정의 결과로 함경남도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30% 건설하다 만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걸 손봐서 원래 계획대로만 진행하다 보면 북한이 요구하는 200만KW 전력 공급이 바로 실현된다.

진짜 문제는 헌 집을 허는 일이다. 북·미 간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이렇게 가다간 미국을 사정거리에 둔 장거리탄도미사일과 핵탄두 몇 개(북한은 현재 각 관련 기관의 관점에 따라 15∼180개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됨)만 함정에 실어 미국 본토로 내보내는 쇼로 끝날 듯하다.

궁극적 비핵화는 3,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핵두뇌를 무장 해제하는 것이다. 방법이 있다. 현재 20여 기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원의 원자력 두뇌(엔지니어 등 기술자)가 1만여 명이다. 북핵 인력 수천명이 내려와 예를 들어 6개월 동안 수당 받아가며 한국의 평화적 원전 기술을 전수받고 발전시키는 연수 교육장으로 한수원을 활용해 보자. 핵인력은 북한에 되돌아가면 ‘공화국 평화 에너지의 전도사’로 변신할지 모른다. 북한이 외화까지 벌면서 새 집 짓는 비전을 갖고 헌 집을 헐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을 설득해 핵무기와 원전을 교환하는 과감한 협상을 시작하길 바란다. 그러면 비핵화 이슈에서도 동아시아 주도권을 잡을 공간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