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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2018년 6월] 기고 에세이

동숭로에서: 의미 있는 실패는 성공의 과정

정인석 한국트랜스퍼스널학회 고문·전 명지대 교수


의미 있는 실패는 성공의 과정



정인석
교육51-55
한국트랜스퍼스널학회 고문
전 명지대 교수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의미 있는 실패란 성공으로 가는 한 부분이며 과정이다. 어차피 치러야 할 실패라면, 우리에게는 ‘가능성 사고’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절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사고를 전환시켜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재정의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류를 위해 기여한 수많은 과학적 연구의 결실도 의미 있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이뤄졌다. 한때 신소재 연구의 세계적 메카로 지칭됐던 트랜지스터의 원산지 미국의 벨 연구소에는 실패한 신소재 합성 실험들을 기록한 연구자료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이는 지속적인 ‘의미 있는 실패’라는 ‘경험의 재구성’의 과정이 있었기에 성공이 가능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의 정신적 풍토는 실패를 인정하는 사회로서, 실패한 실험노트를 완성된 연구논문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다. 참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회다.

용기란 흔히 ‘만용’과 혼동되기도 한다.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함부로 부화뇌동하는 용맹성이나 열등감의 역표현인 ‘우월 콤플렉스’처럼 잘난 척하고 뽐내며 방자하고 교만스럽게 구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용기가 될 수 없으며, 거만이며 만용이다.

용기란 본질적으로는 자기 신뢰의 구체적 표현이며 자신의 능력을 굳게 믿는 데서부터 나오게 된다. 이 신뢰가 용기에 활력소를 주며, 용기는 희망을 키워주고, 희망이 신념을 갖게 하고, 신념이 행위를 낳게 된다. 또한 용기란 책임감이나 소속감과도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용기란 나의 인생이 나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확신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누구나 용기를 가졌다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으며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용기가 있는 사람이란 신체적인 강인성, 지적인 활력, 정의적(情意的)인 지구력, 창조적인 이미지의 활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가 있다. 이런 사람은 1)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가 있는 사람이며, 2) 난관을 책임지고 떠맡을 수가 있는 사람이며, 3)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협력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이런 사람은 꿈보다 해몽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며 사고의 전환이 탄력적이어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변환시킬 수가 있다. 요컨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의미 부여’를 희망적이며 긍정적인 의미로 쉽게 전환시킬 수가 있다. 이른바 리프레이밍(reframing)이 쉽게 가능하다. 부정적이었던 사실에 대한 의식 내용을 긍정적 의미로 재구성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개입을 ‘감정의 교환(trade feeling)’, ‘방법의 전환(a change of strategy)’, ‘재정의(redefining)’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힘든 역경에 대한 의미 부여를 미래 지향적이며 희망 지향적인 의미로 전환한다는 것은 실패를 의미 있는 실패로 만드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라고 본다. 다음은 리프레이밍의 관점에서 실패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했을 때 생각해볼 수 있는 의식 내용을 생각해 본 것이다.

1) 나의 실패는 내가 아무것도 달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나의 실패는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부족한 도전의 정신을 체험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나의 실패는 내가 무능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나의 실패는 내가 무모했던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 학습의 과정에서 일시적인 시행착오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나의 실패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 분야에서는 내가 아직 초심자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6) 나의 실패는 인생을 낭비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나의 실패는 신이 나를 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내게 좀더 큰 힘을 주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8) 나의 실패는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과도적인 노력의 산물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용기란 실패를 극복하는 경우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려면 각종 부정, 불의, 자기와의 싸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굳센 의지와 용기가 있어서 인(仁)과 덕을 베풀 수도 있고, 선(善)을 실천할 수도 있다. 중용(中庸)에서, 사람이 마땅히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세 가지 덕(三達德)을 지(智), 인(仁), 용(勇)으로 보아, 지(智)에 의한 지(知)와 인에 의한 실행으로서의 결단성, 강의성(剛毅性), 적극성도 용기에 있다고 본 것도 사람이 사람된 소이(所以)를 알고 그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용기란 홀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럴 수 있게 하는 의지(意志)의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의지란 단순한 충동이나 본능적인 욕망과는 달라서 동기에 의거하면서 동기에 대해 자각적인 태도를 갖고 어떤 행위를 하고자 결단하는 선택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의지가 자연필연성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의지에 의해서 사람의 사람된 도리에 합당한 선택적 행위의 결의성(決意性)도 용기라는 정신적인 기개(氣槪)의 도움을 받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부정과 싸우고 정의 구현을 위한 용기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적 의지가 따랐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 동문은 

모교에서 문학사(교육학 전공), 교육학 석사학위(교육심리학 전공)를 받은 후 한양대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대, 고려대, 숙명여자대, 한양대 외래교수, 명지대에서 교수 및 사회교육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트랜스퍼스널 학회 고문으로 있다. 

1929년생으로 구순이 넘은 지금도 집필에 몰두하며 저서를 내고 있다. '역경의 심리학' 안내서이자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 '역경이 있어 삶은 의미가 있다'는 심리학 전문 서적으로 드물게 제3판이 간행되며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