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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021년 10월] 기고 에세이

동숭로에서: 관악캠퍼스 첫 입학생, 공릉캠퍼스 마지막 졸업생

김송호 과학칼럼니스트
 
관악캠퍼스 첫 입학생, 공릉캠퍼스 마지막 졸업생

김송호 
화학공학75-79 
과학칼럼니스트

 
아메리카 대륙의 어느 인디언 부족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자신의 혼이 따라 올 수 있게 가끔 멈춰서 기다린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면서 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여유가 없다. 물론 앞만 보고 달리다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달릴 체력이 고갈되면 어쩔 수 없이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지만, 인디언처럼 혼이 따라오길 기다리는 여유를 부리지는 못한다. 다만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탓할 뿐.

나도 정말 정신없이 앞을 보면서 달리다가 어느 날 멈춰 설 수 밖에 없는 나이에 이르러서 우연히 원고 청탁을 받고 나서야 모처럼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동안 가끔 과거의 추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렇게 떠오른 과거에 깊이 빠져들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던 게 현실이었다.

나의 대학생활을 얘기할 때 가장 크게 내세울 수 있는 자랑거리(?)는 관악캠퍼스 첫 입학생이면서 공릉캠퍼스 마지막 졸업생이라는 점이다. 1975년 관악캠퍼스가 완공되자 나는 교양과정을 관악캠퍼스에서 보내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관악캠퍼스 주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나는 노량진에서 하숙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공학계열로 입학했던 나는 1학년을 마치고 학과를 정하고 나서 2학년부터는 공릉 캠퍼스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공릉동 주변이 아파트 단지로 개발이 되어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도시 변두리 시골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특히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상계동까지 운행하던 10번 버스와 235번(?) 버스는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탑승으로 악명이 높았다. 대부분의 승객이 상계동과 중계동에서 내리는 관계로, 중간 지점인 휘경동에서 내려야 했던 나는 통로가 막혀서 도저히 내리지 못하고 몇 정거장을 지나쳐서 내려야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 4학년) 재학생


당시 공릉캠퍼스 주변의 숙소 상황이 변변치 못하다보니 기숙사 입주가 학생들의 지상과제였다. 하지만 기숙사 입주 경쟁률이 너무 높아 나는 추첨에 떨어져서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휘경동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입학생 수가 많았던 몇몇 고등학교의 선배들이 기숙사 추첨권을 빼돌려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바람에 나처럼 선배가 없는 시골 학생들은 당첨 확률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먼 과거의 얘기라 이제는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말이다.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해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저녁에 어울려 다니지 못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점이 학생으로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그러다 보니 낭만이 빠진 무미건조한 대학생활이 되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사실 나는 제주도 출신으로 나랑 같이 입학한 고등학교 동기는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한 명뿐이었다. 선배가 없는 나로서는 시험 족보도 없이 공부해야 해서 다른 동기들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당시에 나는 순진(?)해서 족보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시험이 끝난 다음에 다른 동기들이 ‘족보에서 나왔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듣고, ‘어떤 명문 문중이기에 족보에도 그런 시험 내용이 나오나?’ 하고 의아해 했으니 말이다.

요즘 가끔 서울과학기술대학교로 바뀐 공릉캠퍼스를 들르면 과거 내가 공부했던 공릉캠퍼스의 모습이 거의 없어져서 섭섭하다. 학교 앞에 있던 중국집하며 당구장의 모습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관악캠퍼스로 이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수조차 하지 않는 낡은 건물에서 공부하고 실험하던 추억은 이제 나를 비롯한 몇몇 노인네들의 기억 속에만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김 동문은 모교 졸업 후 퍼듀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 기술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주제로 뉴스레터를 발송하며 ‘신의 존재를 과학으로 입증하다’, ‘행복하게 나이 들기’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종합 인터넷 신문 ‘메가경제’에 ‘김송호의 과학단상’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