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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호 2022년 3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F’ 학점을 지우다

석현수(기계공학72-74) 수필가 에세이
‘F’ 학점을 지우다
 


석현수
기계공학72-74
수필가
 
‘총 맞은 기분’ 안겨준 점수
인문학에 눈 뜨면서 극복해 
 
프레드 스미스(Fred Smith)는 경영학 기말과제로 항공 특송 시스템에 관한 연구 논문을 냈지만 불행하게도 담당 교수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C’학점을 주었다(1965년, 예일대). 그러나 그는 후일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x)라는 항공 특송 화물의 신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본인 논문의 정당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에서는 옳고 그르다는 것이기보다는 서로의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재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학도의 ‘F’학점은 오랫동안 주홍 글씨로 상처를 남겼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유체역학이란 과목에 펑크를 냈다. 그때의 기분은 총 맞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세월이 흘러 수학 공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F’학점에 대한 패자 부활전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인정사정을 내밀 수 없는 자연과학의 쓴맛을 보았다(1972년, 서울공대). 70년대 초는 유신반대, 한일회담반대란 시위 소용돌이로 휴강이 잦았다. 정상적인 학과장 수업을 못 했다. 중간고사나 기말시험은 리포트로 대신했기에 지금도 내가 풀어냈던 수치가 왜 정답에서 벗어났는지를 알지 못한다. 

학교생활에 대한 추억이야 민숭민숭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생활의 백미라면 청춘남녀의 사랑놀이가 되겠지만 내게는 펼쳐 보일 연애담이 없다. 기숙사 이름이 절 이름 같아서일까. 나는 청암사(靑岩舍)라는 절에서 수련하는 스님인 양 조용히 살았다. 왜냐하면 데모로 시국이 어수선할 때라 군인 학생으로서 처신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우들은 나를 향해 석(石)형이란 존칭을 써 주었고 예비 군인 격인 학도 군사 훈련단(ROTC)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와 앞으로 있을 저들의 군 생활에 대한 상담을 하기도 했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 4학년) 재학생


공학도로서 ‘F’학점의 트라우마는 인문학에 눈을 뜨고 난 뒤에서야 지울 수 있었다. 노년에 접어들어 생업에서 물러나 퇴직 생활을 시작할 때다. ‘물’과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F’학점을 안겨준 유체역학의 고차 방정식은 노자 도덕경 속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속으로 녹아들었다. 상선약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구다. 지극한 도(道)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물은 늘 낮은 곳으로 흘러 겸손의 성품을 가진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한없이 변하면서도 본래의 성질을 잃지 않는다.  

번개처럼 지나간 짧은 학교생활이었다. 졸업한 지 어언 50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지금 필자는 몇 권의 수상록과 시집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문학노년(?)을 즐기고 있다. 세월 가니 얼굴도 두꺼워지나 보다. 무엇이 자랑할 것 없어 낙제점을 꺼내 들고 횡설수설 하다니, 그러고 보니 송구스럽기도 하다. 성심성의껏 지도 편달해 주셨던 그때의 교수님들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너그럽게 동료로 받아 주었던 기계과 급우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모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VERITAS LUX MEA를 오래오래 기억하며 살아가리라. 


*석 동문은 국방부 인력양성 계획의 일환으로 모교 기계공학과에 편입학해 공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30년간 항공기 군수분야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했으며 현재 대한민국성우회 회원이다. 한국 문인협회 회원으로 문학 활동 중이다. 저서로 ‘주관적 산문쓰기’ 등이 있다. 최근 본회에 장학금 1000만원을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