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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호 2018년 6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한반도 대전환과 서울대인의 역할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고문, 본지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한반도 대전환과 서울대인의 역할 



이계성

정치77-81

한국일보 논설고문

본지 논설위원


한반도 정세의 격변이 진행되고 있다. 아니 한반도와 남북관계를 넘어서는 지구적 차원의 정세 변화다. 두 차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을 문명사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물론 일찍이 경험해보지 않은 이 대격변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고, 국가들 간 협상의 어려움, 예기치 못한 변수 등에 비춰 해피 엔딩을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거부하기 어려운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미 구르기 시작했고, 그 종착지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이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슴에 품는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울대인의 역할을 거론하는 걸 좀 생뚱맞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남북화해 기류를 타고 모교 총학생회 중심으로 ‘서울대-김일성대 교류추진위원회’가 결성돼 김일성대와의 학생 교류를 위한 북한주민접촉 승인 신청서를 통일부에 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이 문제를 한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모교 재학생들이 들고나온 ‘우리가 간다 평양으로!’ 손 팻말에서는 1960년 4·19혁명 때 학생들이 외쳤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구호가 떠오른다. 통일부는 신중한 입장인 모양이다. 


비핵화 등에 결정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학생교류를 포함한 민간교류의 물꼬를 트기는 어렵다고 보는 듯하다. 성낙인 모교 총장은 얼마 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대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 및 2018 베이징포럼’에 참석해 태형철 김일성종합대 총장을 만나 서울대-김일성대 간 교류협력을 제안했다고 한다. 김일성대 측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폐쇄적 체제인 북한으로서는 민간분야 교류의 봇물이 터지면 체제유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한사회 내에서도 불안한 시선이 적지 않다. 모교 당국이나 후배들이 비핵화, 남북 및 북미관계 진전 추이를 지켜보면서 김일성대와의 교류를 차분하게 접근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그보다 서둘러야 할 것은 한반도 정세 대전환 이후 남북관계 및 동북아시아 협력 비전의 정립이다. 통일에 대한 과도한 기대수준을 조절하면서 남북 공동번영의 틀을 만들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및 동북아 협력체제 구축 비전과 이론 마련은 이 나라 최고 지성 집단인 서울대인들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역사 문화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이 미·중 패권 경쟁을 넘어 상호이해와 협력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울대와 서울대인이 도쿄대, 베이징대, 김일성대와 손잡고 앞장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