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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호 2018년 5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와 서울대생, 존재의 이유

인식의 변혁, 사고의 대전환해야
관악춘추

서울대와 서울대생, 존재의 이유 



채경옥
경영86-90
매일경제신문 주간부국장
본지논설위원 

최근 몇 차례 서울대 경영학과 후배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할 기회가 있었다. 

거의 30년 이상 격차가 나는 후배들과 대화를 하면서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적지 않구나 새삼 느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최고 대학 최고 학부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길이 과연 내 길인가’ 방황하는 모습이 그렇고 로스쿨(고시), 취업(공기업 혹은 대기업), 대학원(유학)의 세 갈래 길이 대체로 앞에 놓여있는 선택지의 전부라는 현실도 3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30여 년 전만 해도 그다지 인기가 있거나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던 대기업들이 지금은 ‘신의 직장’ 수준이 돼 있다는 것 정도였다.

서울대생들의 진로와 사고의 폭이 이처럼 좁은 선택지 안에 갇혀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불행한 일이다. 

최근 20년간 세계경제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혁신의 중심이 대학이 됐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의 창업이 적극 권장되고 있고 대학생 스타트업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대생들의 진로 고민 속에 창업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실제로도 2016년 서울대 학부생의 진로의식 조사에서 창업을 1순위로 희망한 비율이 3.4%에 불과했다. 창업 기피 혹은 창업 공포가 심각한 셈이다. 

인식의 변혁, 사고의 대전환 필요

학교에서는 나름 미국의 실리콘밸리, 중국의 선전 등을 방문하는 계절학기 프로그램이나 고시촌이 밀집해 있던 녹두거리에 서울대 스타트업 캠퍼스 ‘녹두.zip’을 여는 등 학생들의 창업정신 고취를 위해 애쓰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마도 학생들이 서울대에 들어오기 위해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방식, 서울대가 학생들을 선발하는 방식, 뽑아놓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한국은 하루하루 뒤처지고 있다. 지금 상태라면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더라도 손들어 관악을 가리키기가 면구스러운 상황이다. 서울대와 서울대생의 경쟁자는 국내의 옆 대학이 아니다. 미국 영국 중국에서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을 배출해내고 있는 대학과 기업가들이 경쟁자다. 서울대와 서울대생 모두 근본적인 인식의 변혁, 사고의 대전환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