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79호 2018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이유 있는 항변

정연욱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 겸 뉴스이노베이션팀장·본지 논설위원

이유 있는 항변

정연욱

공법85-89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 겸 뉴스이노베이션팀장·본지 논설위원


몇 년 전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그의 수업은 하버드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명강의였기 때문에 ‘출판 흥행’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의’란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이 수백만부나 팔린 현상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정의 신드롬’이라고 할 만 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정의와 공정 가치에 적극 호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된 최순실 게이트는 ‘정의 신드롬’에 불을 붙였다. 정의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내는 키워드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젊은 세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현실이 답답한 만큼 정의와 공정 가치가 구현되는 세상을 기대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다.

해가 바뀌면서 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1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64%로 나타났다. 전주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2주 연속 하락에 이어 취임 이후 갤럽조사에서 최저치를 보였다.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논란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갤럽 조사에서 20대의 변동 폭(75%→68%)이 특히 컸다. 이들은 왜 등을 돌리고 있을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의 방식이 문제가 됐다. 외국인 감독도 사전에 단일팀 진행 상황을 몰랐다고 말할 정도로 밀어붙인 정부의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소통을 역설해온 현 정부가 정반대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대의가 옳다면 무조건 따라가야 하느냐는 불만도 나왔다.

여권 인사들은 젊은 세대의 ‘항변’에 허를 찔린 모습이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였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 보수 정부에서 만들어진 북한에 대한 대결 의식이 문제”라며 “단일팀 성사가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이라는 설명을 계속하면 상황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보수 정권 시절 반북(反北) 프레임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것이다.

프레임 전환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젊은 세대들은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이어 최근 핵 실험까지 직접 목격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도 많이 접했다. 이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바뀌었다. 과거 통일과 남북화해를 외쳤던 여권 주류 인사들의 젊은 시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의 뜻을 따라 달라”는 행동은 정의, 공정 가치와 충돌한 것이다.

젊은 세대의 이유 있는 항변은 여권이 분위기를 일신하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정부의 어떤 모습에 반발했는지 정확한 현실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유독 정의와 공정 가치에 대한 갈망이 컸다. 좌우 진영 구도를 뛰어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이 변화의 저류를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