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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018년 1월] 기고 에세이

녹두거리에서: 미세 먼지에 관해

최민석 소설가

미세 먼지에 관해

최민석(대학원04-06) 소설가



예전에 본 기사 내용이다. 두바이의 한 건설회사가 돔 테마파크를 건설한다고 했다. 관광단지이기 때문에 호텔은 물론, 뉴욕의 브로드웨이,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같은 세계의 명소를 재구성하고, 관광객을 위한 병원 단지도 30만 제곱미터 크기로 조성한다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돔은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여름에는 유리로 된 뚜껑을 덮고, 겨울에는 때에 따라 개방을 한다. 총 면적 450만 제곱미터이니, 말이 테마파크지 사실상 ‘돔 도시’인 것이다.

나는 ‘비인후(鼻咽喉)’ 계열이 약하다. 그 탓에 미세먼지 수치를 보지 않더라도, 금세 알아차린다. 몸이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소설가라는 본업 외에, 밴드 보컬과 라디오 패널로도 활동하기에 내게 목 관리는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연일 미세먼지가 나빴던 작년 하반기, 공기청정기를 샀다. 기왕이면 성능 좋은 제품으로 고르니, 90만원이 넘었다. 밥줄과 연결된 것이니, ‘그러려니’하고 샀다. 그런데, 한 대만으로는 집안의 공기 오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겨울에도 미세먼지가 나빠 창을 못 여니, 결국 제습기도 필요하게 됐다. 제습기 역시 성능 좋은 제품은 80만원을 호가했다. 제대로 관리하려면 방마다 공기 청정기를 놓고, 제습기도 두어 대 놓아야 했다. 그러면 500만원은 지출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때, 미세먼지 문제는 계급의 문제라는 것을 절감했다.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미세 먼지가 극심한 날, 자본가들은 공기 좋은 실내에서 근무를 한다. 공기의 질이 관리된 실내에서 달리기를 한다. 공기가 청정한 차를 타고 이동한다. 반면, 실외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마스크 하나에 의지한 채 땀을 흘린다. 육체노동을 심하게 하면 호흡이 가빠져 마스크를 쓰기도 어렵다. 이와 같이 미세먼지는 완전한 계급의 문제다. 이때, 머릿속에 예전에 본 두바이의 기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해봤다.

2060년 서울의 어느 날, 하늘은 신이 빵 봉투를 씌어놓은 것처럼 뿌옇다. 그 희뿌연 창공 가운데, 노란 백열등 같은 게 하나 비친다. 태양이다. 서울은 한낮의 태양조차 희미하게 보일 만큼 탁해졌다. 사람들은 방독면을 쓰고 다닌다. 어떤 이는 산소통을 배낭처럼 메고, 입에 연결된 산소마스크를 끼고 다닌다. 방독면을 벗으면 입안에 모래 같은 먼지가 들어오고, 직장인들은 비닐 재질의 블레이저를 입고 다닌다. 먼지가 하도 많이 쌓여 잠시 외출하면 물로 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강남구에 다다르면, 터널을 지나야 한다. 차를 탄 게 아니라, 보행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방역관리 차원에서 하얀 증기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천장을 통과하면 거대한 유리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 구 전체가 돔으로 싸인 것이다. 그 안에는 백화점도 있고, 아파트도 있고, 병원도 있고, 야구장도 있다.
물론 이민을 갈 사람들은 다 가고 난 후다. 그 이민자 수가 너무 많아, 세계 각국은 한국인의 이민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하여, 처음엔 돔을 건설하고, 그 다음에는 영화 ‘델리카트슨의 사람들’처럼 거대한 지하 도시를 짓는다. 코엑스 몰의 백배, 천배 쯤 되는 지하도시 말이다. 이곳의 부동산 값이 가장 비싸다. 성공의 기준은 그 지하도시로 입주하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빈자들은 황갈색 세상 속에서 육체 동을 하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미세먼지는 확실히 계급의 문제라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끔찍하지만, 어쩌면 정말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말이다.



*최 동문은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데 이어 2012년 장편소설 '능력자'로 오늘의작가상을 받았다.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끝까지 읽게 만드는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던 등단작 심사평처럼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치와 페이소스로 많은 팬들이 그의 글을 찾고 있다. 최근 대학생 잡지 '대학내일'에서 20대 독자들이 보내온 각양각색 고민에 재치있는 답변을 내놓으며 화제가 됐다.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장편소설 '능력자', '풍의 역사', '쿨한 여자', 에세이 '베를린 일기',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 등을 썼다. 6,70년대 지방 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의 보컬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