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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2021년 5월] 기고 에세이

녹두거리에서: 드모르간 법칙,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

장우석 숙명여고 수학 교사, 인문·소설 작가


드모르간 법칙,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




장우석
수학교육91-97
숙명여고 수학 교사
인문·소설 작가


논리학에 ‘드모르간 법칙(De Morgan’s laws)’이라는 것이 있다. 고등학교 수학교과서에 나오는 이 내용은 두 개 이상의 사건이 결부된 문장의 진리값(참과 거짓)의 관계를 나타낸 법칙인데 다음과 같이 기호로 표현된다.

~(p₁∧p₂∧…∧pn)=~p₁∨~p₂∨…∨~pn

건조해 보이는 이 추상적 기호의 의미를 간단한 예를 통해 설명해보겠다. 성적이 오르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p) 공부 방법도 적절해야 한다(p). 즉 두 가지 사건이 겹쳐(∧) 일어나야만(p∧p) 성적 향상이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럼 성적이 향상되지 않으려면(~(p∧p)) 어떻게 해야 할까.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것과(~p) 방법이 적절하지 않은 것(~p) 둘 중에 하나만(∨) 하지 않아도(~p∨~p) 성적 향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p₁∧p₂)=~p₁∨~p₂

이 결론은 일반화될 수 있다. 즉 n개의 사건이 겹쳐야 어떤 결과가 나타난다고 할 때(p∧p∧…∧pn), 그 사건들 중 어느 하나만 부정되어도(~p∨~p∨…∨~pn) 해당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p∧p∧…∧pn)).

~p₁∨~p₂∨…∨~pn=~(p₁∧p₂∧…∧pn)

이것이 드모르간 법칙의 의미이다. 우리는 이 법칙을 일상에서 생각보다 많이 사용한다. 그 중 하나가 이런 것이다. A가 이런 저런 세세한 잘못들(p, p, …, pn)을 지적하며 B를 비판한다고 하자. 이 경우 A가 주장하는 명제는 pp∧…∧pn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 아니 비난을 열심히 듣고 있던 B는 그 중의 오류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pi). p, p, …, pn 중 어떤 하나(pi)에 오류가 있으므로 드모르간 법칙에 따라 A의 비판은 결과적으로 틀린 주장이 된다(~(pp∧…∧pn)).

오해하면 안 된다. 이 결론은 B가 p, p, …, pn ‘전부를 겹쳐서 저지른 게’ 아니라는 의미이지 p, p, …, pn 하나하나를 다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B는 그 하나의 오류를 방패삼아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 내용 전체를 막아낸다. 단 하나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정당한 요소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된다. 드모르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과도하게 해석하면서 자신의 잘못 전체를 부정하고도 본인이 정당하다고 믿는(즉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힌 논리학자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 4학년) 재학생


과거에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의 잘못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이 때 우리는 현재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시인함으로써 내가 처한 모순적 상황을 해소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이쪽이 바람직한 길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반드시 바람직한 선택만을 하지는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삶 전체가 부정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신에게 존재하는 눈곱만큼의 억울한 부분을 과장되게 주장함으로써 모순을 해소하고 내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다른 길을 찾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하는 이유이다.

주역 64괘 중 유일하게 흉이 없는 괘는 15번째 겸(謙)괘이다. 가장 좋다는 태(泰)괘, 가장 좋지 않다는 비(否)괘에도 길과 흉은 함께 얽혀 있다. 하지만 겸괘에는 흉이 없다. 그만큼 겸손이 어렵다는 말일 수도 있다.

謙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終也
(겸은 높이 있을 때 빛나고 낮아도 사람들이 함부로 넘지 못하니 군자의 완성이다) -주역 상전(象傳)


자신의 흉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사람의 지성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으로 논리적인 삶은 원인과 결과에 충실한, 겸손한 삶이다.



*장 동문은 모교 수학교육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내게 다가온 수학의 시간들', '수학의 힘', '수학, 철학에 미치다' 등 수학에 철학을 접목한 교양수학서를 다수 펴냈다. 추리소설 작가로 등단해 최근 소설집 ‘주관식 문제’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