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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021년 2월] 기고 에세이

녹두거리에서: 당신은 변화를 읽고 있나요

SF소설가 이재호


당신은 변화를 읽고 있나요

이재호
응용생물화학94-01
SF소설가


기업의 경영 활동과 관련해서 와해성혁신 또는 파괴적 혁신이론에 이어 ‘빅뱅 디스럽션(Big Bang Disruption)’이라는 가설이 있다. ‘빅뱅파괴’, ‘빅뱅와해’ 또는 단순히 ‘빅뱅이론’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가설은 물리학의 빅뱅이론처럼 등장과 동시에 산업이나 시장 전체를 순식간에 바꾸거나 점령해 버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들어 동종산업이 아닌 이종산업에서 업종을 넘나드는 기업 간,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등 기존 와해성 혁신의 틀을 뛰어넘는 최근의 산업 현상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인데, 스마트폰의 등장이나 앱스토어 그리고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가 그 예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제조사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거나, 거대 물류회사가 인공지능과 우주산업 등에 진출하는 것 등도 빅뱅디스럽션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관건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감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 본 가설의 핵심인데, 특기할 점은 이 가설을 주장한 래리 다운즈(Larry Downes)와 폴 누네스(Paul F. Nunes)에 따르면 이런 변화를 탐침할 수 있는 활동 중에 ‘트루 텔러(True Teller)’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루 텔러란 쉽게 말해 미래의 변화를 미리 읽어내고 상상해내거나 그려내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반드시 저명한 구루(Guru)가 아니더라도 산업계 일선에 있는 직원, 외부의 산업분석가, 또는 SF소설가를 예로 들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트루 텔러로서 SF소설가를 언급했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해서 대표적인 빅뱅파괴자인 미국 아마존의 회장 제프 베이조스나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자신들이 청소년시절 엄청난 SF소설 마니아였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자랑해왔다. 그들은 어린 시절 읽었던 SF소설이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한참 예민한 시기인 청소년들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게 만드는 매체는 SF소설 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혁신적 변혁이 SF소설 속에 미래상으로 제시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기 십상이고 그들이 SF소설을 읽으며 품었던 꿈들이 성인이 되어 실현하려는 동력이 되거나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고양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최근까지 전 세계는 기후위기, 인공지능의 급부상,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까지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 세상 자체가 SF소설 속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때문인지 최근 한국에서도 그간 소수 마니아층에서 향유되던 SF 소설 장르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이것은 2010년대 들어 SF 영화의 흥행, 인공지능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디지털 트랜스포매이션이니 하는 기술혁신에 따른 산업 전반의 큰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빅뱅디스럽션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진정한 트루 텔러’에 목말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등의 첨단 산업의 발전과 K팝, 한국영화 등 문화예술 장르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현실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서울대 동문들 스스로가 자신이 과연 ‘트루 텔러’인지 한번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그리고, 서울대총동창신문도 청소년들이 SF소설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니까 말이다. 그들 가운데 행여 미래 한국의 일론 머스크가 꼭 나오지 않으면 어떤가? 트루 텔러의 꿈을 가진 아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들의 앞날은 더 풍요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터미네이터가 아닌 스타트랙의 그것처럼.



*이 동문은 모교 학사와 석사 졸업 후 SF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매미’, ‘동백섬’, ‘웰컴 투 더 목성’ 등의 단편이 실린 ‘SF단편집’(자음과모음) 등을 출간했다. 올해 장편 및 단편집 출간을 계획 중이다.
 강연과 기고 활동을 통해 국내에 SF장르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강연 및 기고 문의: railkr@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