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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021년 12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그 시절의 고민

이준영 SF소설가
 
그 시절의 고민

이준영
제약07-11
SF소설가

‘삶의 이유’ 고민하던 대학시절에서 
존재 목적 찾는 AI로봇 얘기 나와

대학생 시절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역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였다.

삶에는 마땅히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생에 활기와 원동력을 부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목적이 없는 삶이란 마치 관객 없는 연극처럼 공허할 것 같았다. 내 삶이,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갈 뿐인 의미없는 무언가가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니 한 번 주어지는 인생에서 그 목적을 무엇으로 정하느냐는 당시 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사실, 그것은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이미 답을 정했어야 하는 주제였다. 설정한 삶의 목적과 밀접한 진로를 선택하는 편이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기에 아무래도 유리하니까.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을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맹목적으로 공부하며 보냈던 까닭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다. 인생을 관조할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진로를 선택한 이후였다. 삶의 진행 단계를 두고 생각하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그나마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지 않나.

머리가 시키는 것은 어린 시절의 꿈인 과학자였다. 다행히 이쪽은 내가 선택한 진로와 잘 맞았다. 반면 가슴이 시키는 것은 창작자, 특히 SF 장르의 콘텐츠 창작자였다. 감동과 울림을 주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만화, 소설을 접할 때마다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마구 부풀어올랐기에.

하지만 부끄럽게도 그 열망은 한없이 막연하기도 했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뭘 해야 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 없이 학부 시절을 흘려보냈다. 사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몰랐다. 동아리 활동, 사람들과의 교류, 연애를 비롯해 한 번뿐인 청춘 시절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졸업이었다. 나는 과학자의 길을 가고자 대학원에 진학하고 있었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 4학년) 재학생

가슴은 그제서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콘텐츠 창작자라는 꿈은 시작도 못 해보고 사그라드는 건 아닐까. 주변 사람들은 취직이든 유학이든 자아실현을 위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 때였다. 나는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분야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영화는 자본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한 분야였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하기엔 그림에 소질이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소설이었다. 써낼 의지만 있다면 스마트폰으로도 써낼 수 있는 것이 소설이었으니까. 가진 것 없는 대학원생인 내게는 분명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사서 정독하기 시작했다. SF 단편 소설집을 사다 읽었다. 대학원 선배의 도움과 응원을 받고 모자란 글이라도 쓰기 시작했다. 회사에 입사한 후에도 틈틈이 글 쓰는 습관을 이어갔다.
중요한 것은 주제였다. 다른 욕심은 없었지만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싶었다. 문제는 살아오면서 화두를 던지는 능력은 개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신 내게는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바가 있었다. 인간에게 삶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에게 부여한 목적과 인간이 느끼는 삶의 의미 사이에 어떤 비슷한 질감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조형하기 시작했다.

나의 첫 장편소설 ‘파라미터O’는 그렇게 탄생했다. 운이 좋게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오랜 시간을 들여 다듬은 끝에 출간했다. 덕분에 부족한 내가 SF 소설가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10년 넘게 고민한 지금에 와서도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연구도 글도 그저 재미있으니까 할 뿐이지 삶의 목적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궁금하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아니, 어쩌면 그저 하루하루 흘러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은 아닐까? 대학생 시절의 나는 그 진실을 마주하기에 너무 어렸을 뿐.

오늘도 나는 고민을 이어가 본다. 답은 찾지 못해도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그 고민을.



*이준영 동문은
모교 약학대학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 2017년 '님아 그 우주를 건너지 마오'로 제5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우수상을 수상했다. 올해 첫 번째 장편소설 '파라미터O'를 펴냈다. 

▷이준영 동문의 글 읽기: https://britg.kr/user/leejy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