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0호 2022년 5월] 기고 에세이

추억의 창: 땀 흘리며 뛰어다니던 길


땀 흘리며 뛰어다니던 길



김태훈
건축02-07
내공부연구원 대표·칼럼니스트

관악 구석구석 누비던 시간표
내 삶의 짜임새와 닮아 있어


나는 5년제가 된 건축학과의 첫 학번이다.

건축학과는 공학이면서 미학이고 미학이면서 사회학이라며, 걸어서 40분 넘는 사회대와 공대 미대 사이를 종종거리며 다녔다. 시간표를 잘못 짜기라도 하면 도면통을 둘러메고 미대에서 공대까지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뛰곤 했다. 그 길에 잠시 사회대 간이식당, 소위 사깡에 들러 시원한 비엔나커피 한 잔 사 먹는 것이 여름날엔 낙이었다.

온 관악산을 누비며 수업을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의미 없는 수업은 없었다. ‘그런 과목도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서 시간표를 짜기 일쑤였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차곡차곡 지금의 내가 되었다.

현대무용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체교과 실기 과목이다. 비전공생 대상 수업이었어도 교수님은 열심이셨다. 현대무용은 무엇이며 현대성이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그 생각을 몸으로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지 직접 움직이고 가르치셨다. 모두 같이 천천히 걷다가 교수님이 뻗은 손을 동시에 쳐다보는 것만으로 대중사회의 의미를 표현하던 그 수업의 놀라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책으로만 배우던 이론들이 어떻게 실제 문화와 사회에 나타나고 적용될 수 있는지 그때 느낀 사고법은 지금도 나의 삶에 도움을 준다.



일러스트 김나은(디자인 4학년) 재학생


그 당시 흔치 않던 외국 교수님들의 미대 수업도 열심히 찾아 들었던 기억이다. 5명도 안 되는 학생들이 폐강 위기를 넘기고 교수님과 한 테이블에 앉아 매시간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서는 어디를 보아도 시선이 끊긴다. 그것은 산과 강, 높낮이가 많고 전통적인 자연 발생 도로를 가진 도시들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지역성은 도시 디자인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미국 교수님의 이야기는 매일 서울에 살면서도 의미 없이 거리를 보던 나에게 문화를 보는 객관적 관점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수업이 끝나고 서울대입구역으로 가며 버스에서 본 거리의 새로운 느낌이란. 후에 미국 휴스턴에 갔을 때 끝도 없이 계속되는 계획도시의 퍼스펙티브를 보며 그 의미를 통감한 것도 기억난다.

사회대 동아리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HPAIR라는 동아리에 몇 년간 몸담았었다. 하버드 대학생들이 아시아 지역 학생들과 교류하기 위해 만든 학술 동아리였는데 공대생인 내가 우연히 들렀다가 소위 개안을 경험했다. 전국 단위 학술회를 열겠다고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펀딩을 제안하고, 내가 발제한 토론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새 테러리즘 책을 읽던 날들.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글로벌 관점의 고민을 나누던 사회대 친구들은 공대생인 나에게 신기로운 존재였다. 그 중 한 명은 지금 UN에서 일하고 있으니 그 시간은 절대 의미 없지 않았으리라. 그 친구들과는 여전히 교류하며 통찰을 배운다.

지금 나는 인플루언서 IT 회사 경영을 하면서 책을 쓰는 작가기도 하다. 동시에 학생 교육사업을 하며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부동산 개발업도 경험했다. 다양한 분야는 물론 이를 연결하고 통찰하여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것이 현재 나의 업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학교를 생각하면 수업을 듣던 건물은 물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길들이 유독 기억난다. 건축학도는 폭넓게 알아야 한다고 체력 좋던 철부지가 이 과목 저 과목 수업 뛰어다니며 보던 관악산 길들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지금 이런 일을 하나 보다 싶다. 지금도 기억나는 그때 길에서 흘리던 땀이 나에게는 의미가 컸나 보다 싶다.


*김 동문은 모교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스타트업 교육사업에 이어 인플루언서 IT회사를 경영하고 있으며, 민사고 수석 입학·졸업, 모교 수석 졸업 경험을 토대로 정립한 공부법이 화제가 돼 교육 컨설팅도 하고 있다. 책 ‘공부자존감’, ‘서울대 수석은 이렇게 공부합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