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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018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2018 북 리스트

정재권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2018 북 리스트


정재권(국문82-87)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회사 문화부장으로 일했던 2008년의 일이다. 연말이 오자 조금씩 마음의 압박이 커졌다. ‘올해의 책’ 때문이다.

대개 신문사는 연말에 한 해 동안 소개했던 책들 중에서 ‘대표작’을 골라 ‘올해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1년 책 농사의 되새김이자, 혹시 이 책들을 놓친 독자라면 다시 관심을 가져보라는 권유다. 가장 훌륭한 책은 아닐 수 있어도 각별한 존재감을 지닌 것은 분명하니까.

보통 10권을 소개하는데 ‘한겨레’는 국내 서적과 번역 서적으로 나눠 10권씩을 선정했다. 20권을 골라내기란 결코 녹록지 않다. 책 지면이 신문사 가운데 가장 많은 축이어서 한 주에만 눈에 띄는 기사로 10~12권 정도가 소개됐다.

그나마 이것도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뺀 수치다. 1년 전체로 치면 600권 가까이 되니, 20권으로 압축하는 일은 머리에 쥐가 날만하다.

‘톱 20’ 선정은 전적으로 책과생각팀(지금은 책지성팀) 소관이어서 내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20권이 소개된 뒤 부서 안팎에서 으레 뒤따르는 ‘부장은 몇 권이나 읽었어?’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한 해의 독서편력에 대한 은근한 떠보기니 부담이 되지 않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에게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물론 2008년의 ‘톱 20’ 중에서 몇 권을 읽었는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밀이다.

새해 첫 달에 10년 전 일화를 떠올린 건 그 뒤 생긴 습관 때문이다. 1월이 오면 새해의 다짐 가운데 하나로 ‘독서 리스트’를 만들곤 했는데, 2009년부터 ‘올해의 책’이 리스트 선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올해의 책’에서 3권 정도를 골라 봄이 오기 전에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가 바뀌었으니 사실은 ‘지난해의 책’이지만, 좋은 책이라면야 꼭 ‘얼리 어답터’일 필요가 있나, 라고 자위하면서.

그리고 몇해 뒤부터는 4~5개 신문사의 ‘올해의 책’으로 범위를 넓혔다. 대체로 외부 전문가들한테서 추천을 받아 10권을 선정하는 방식이지만, 매체의 이념적 지향성이나 개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났다. 새해의 ‘북 리스트’에 참조하는 것과는 별개로 신문사들의 차이를 유추해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후보작이 늘었으니 결론은 ‘다득점’작이었다. 영화 별점 마냥 한 신문사의 추천에 별 1개를 매겼다. 이렇게 해서 별점이 많은 책을 가려낸 뒤, 그 중에서 관심이 가는 3~4권을 사기 위해 되도록 첫 주에 서점에 갔다.

이제 조심스럽게 나의 2018년 ‘북 리스트’를 소개해본다. 별 5개를 받은 책은 공교롭게 없었고, 4개짜리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한국산문선’(안대회 등),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3권이었다. 그리고 ‘랩걸’(호프 자런), ‘호모데우스’(유발 하라리), ‘힐 빌리의 노래’(JD 밴스), ‘바깥은 여름’(김애란)이 별 3개를 받았다.

그 가운데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 ‘힐 빌리의 노래’, ‘아날로그의 반격’, ‘랩걸’을 읽기로 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사회적 아픔’에 대한 공감과 치유를 고민하는 시간을 줄 것으로, ‘힐 빌리의 노래’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라는 ‘창’을 통해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또 ‘아날로그의 반격’은 디지털 시대의 삶에 대해, ‘랩걸’은 생태와 여성에 대해 지혜를 안겨줄 것 같다.

어쭙잖은 독서 능력과 개인적인 취향의 한계를 무릅쓰고 새해의 ‘북 리스트’를 소개한 건 나를 포함해 보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꼭 ‘올해의 책’을 참조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독서 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종종 들르는 대형서점에 걸린 글귀로 독서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