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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018년 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전문지식의 위기와 서울대인

관악춘추 이용식 논설위원
관악춘추

전문지식의 위기와 서울대인  


이용식 
토목공학79-83
문화일보 논설주간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총동창회는 ‘공익적 친목단체’다. 총동창회 회장단 송년모임에 배포된 주요활동 자료에서 찾아낸 참신한 개념이다. 사무처에 문의해 보니 이번에 처음 사용한 표현이라고 한다. 회칙 제2조는 ‘본회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모교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는데, 이 취지를 잘 압축하는 것을 넘어 기여 대상을 넓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국립대학이든 국립대학법인이든, 모교 동문들은 사회와 국가에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재학 중에는 물론 졸업 후에도 유형무형의 혜택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2018년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공익적 친목’은 어떤 의미인가.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이 말처럼 서울대인들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이자 지성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선출 권력은 아니지만, 국가와 사회의 의사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국가 흥망이 갈린다. 지금처럼 정치가 포퓰리즘에 흔들릴수록 전문지식의 역할이 중요하다. 

동문들은 모교 발전과 후배 양성을 위해 재정과 재능 등 직접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젠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책임에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수평적 네트워크가 활성화돼 있다. 다양한 레벨의 동문 모임은 좁은 의미의 동문회 활동을 뛰어넘어 전문지식 교류의 장 역할도 해야 한다. 이것이 공익적 친목일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서울대인들의 ‘퍼블릭 마인드’는 아직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동창회가 정치나 정책에 대해 결의하거나 같은 목소리를 낼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다양성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동문 각자가 전문가로서 책임을 다할 창의적 방안들을 찾고 실행하는 일이다.
전문지식의 죽음이라고 할 정도로 전문가들의 권위가 추락한 시대다. 고등교육 일반화의 영향도 있지만, 손바닥 안에 모든 지식이 들어와 있다는 인터넷 검색 탓이 크다. 전문가들의 전문적 식견보다는 유명 블로그들의 톡톡 튀는 주장이 더 영향력을 갖는다. 한국에서 특히 심하다. 많은 사람들이 괴담에 더 솔깃하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한국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진다. 이미 그럴 조짐도 보인다. 모교는 개교 70년, 개학 120년을 훌쩍 넘겼고, 국가적으로는 선진국 진입과 4차 산업혁명의 와중에 있다. 최고의 전문가 집단으로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갖고 각자의 방식으로 ‘공익적 친목’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울대는 더 훌륭한 대학이 되고, 국가와 사회는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