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호 2017년 10월] 오피니언 학생기자의 소리
명함의 무게
이건창 대학신문 기자 기고
재학생의 소리
명함의 무게
이건창 독어교육13입
대학신문 기자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여름방학의 어느 날 몇 번의 일정 조율 끝에 어렵사리 연건캠퍼스에 위치한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를 방문해 취재할 수 있었다.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 으레 그렇듯 취재원과 서로 명함을 교환했다. 의생명동물자원연구센터장 강병철 교수님이 주신 명함은 한눈에 봐도 뭔가 독특했다. 무려 세 개의 기관 로고와 다섯 개의 소속과 직위가 좁은 명함 위에 빼곡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1년 남짓 기자 생활을 하며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받은 명함은 모두 편집국 내 책상 한켠에 놓여있는 명함함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학내 사안을 다루는 취재부 기자의 특성 상 명함 대부분은 본부 직원 분들이나 교수님들의 것으로 이름이나 직위를 빼면 생긴 모양은 모두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강 교수님의 명함은 워낙 특이하게 느껴졌다.
저녁이 가까워지고 끝난 취재의 막바지 무렵에야 그 명함에 담긴 의미를 어렴풋이 읽을 수 있었다. 그 명함은 실험동물 관리의 과중한 업무량과 인력난이 낳은 작품이었다. 대부분의 수의사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매우 힘든 동물 관리 노동을 꺼린다. 동물의 생명을 살리려고 애써 배운 지식과 경험을 동물 우리 청소와 실험이 끝나면 일괄적으로 동물을 ‘처리’하는 데에만 쓰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직업의 특성과 하는 일에 비해 박하다고 느껴지는 봉급이 합쳐지면 이런 명함이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 쉽게, 또 자주 볼 수 있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하연 주변을 배회하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도 주고 그들이 살 집도 지어주며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학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정 많았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는 진심으로 추모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실험실들에서 수많은 생명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의외로 잘 모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화장품, 약품, 이미 입증된 많은 생물학적, 의학적 이론과 지식은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지만 그들에게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이런 씁쓸한 사실을 깨닫고 나자 취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많은 생각이 들며 지갑에 넣어둔 명함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는 교수님의 자조 섞인 너털웃음이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명함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괜히 내 명함을 한번 꺼내 본다. 나는 이름 석 자 앞에 붙는 ‘취재부 기자’라는 직함의 무게를 충분히 견디고 있는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명함이든 개인 SNS 계정이든 한번 꺼내서 자세히 들여다보라. 이름 앞에 붙은 구구절절한 설명과 학력, 직함의 무게를 충분히 느끼는가? 혹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신에게 주어진 그 무게를 소홀히 해온 것은 아닌가? (lgc777@snu.ac.kr)
*위 글은 대학신문에도 실린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