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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2015년 11월] 오피니언 학생기자의 소리

학내 이색 대자보 열풍

이지은(정치외교15입) 학생기자




지난 10월 12일 교육부에서 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공식 발표했다. 급작스런 변화로 말미암아 나타난 기상이변인 것일까. 이번 가을, 관악캠퍼스를 물들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흑백의 물결, 대자보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자보들이 학내 게시판을 수놓은 것은 두 해 전의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번 열풍이 유독 눈길을 끄는 이유는 창의적으로 소통하는 이색 대자보들이 모교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학내에 붙은 대자보들 중 상당수는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서울대인 모임’에 게시돼있다. 이를 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자보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이 발표된 직후에는 전형적인 줄글 형태의 대자보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1972’의 반복으로 도배된 대자보(서양사학15입 이원규)를 계기로 기존의 형식을 벗어난 대자보들이 연이어 붙기 시작했다. 역사교육은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하며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나치독일 교육 강령’을 인쇄한 대자보(서양사학15입 정한솔)가 대표적이다. 마치 광고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잡아끌 수 있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대자보들이 유행했다.


한편 소속 학과의 특성을 살린 대자보도 인기를 끌었다. 시각디자인과 신화용 학우는 ‘통일된 이념으로 올바른 역사 인식을 키워나가자!’는 문구의 공산주의 국가를 연상시키는 포스터를 붙였다. 수리과학부 13학번 이경원 학우는 ‘국정화의 정리’라는 이름의 수학 공식으로 ‘1945년과 2015년 사이에 한반도 역사가 거꾸로 흐른 때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대자보로 붙였다.


모교 학생들이 서울대인으로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창의적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시기일수록 오로지 주목받고자 형식의 개발에만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학내에 붙은 대자보들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한 진영은 박근혜 정부의 역사관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반면 다른 진영은 역사의 다양성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압축된 표현방식의 유행으로 전자는 박대통령에 대한 과격한 인신공격성 비방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후자는 국정 교과서와 기존의 검정 교과서 간의 대립 프레임을 강화해서 검정 방식을 과도하게 치켜세울 가능성이 있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이 있다. 요란스러운 소문에 비해 결과는 별 것 아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서울대인의 이색 대자보가 창의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서 쥐 한마리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뜻이 변질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