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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호 2017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김희원 한국일보 기획취재부장·본지 논설위원


언론이 질문을 못하면


김희원(인류89-93) 한국일보 기획취재부장·본지 논설위원



늘 비난을 받는 게 기자의 숙명임은, 기자된 지 얼마 안 돼 곧 알았다. 처음 만난 취재원, 이름 모를 독자, 기사내용과 관련된 분야의 종사자로부터 “기자가 그것도 모르냐”, “기사를 이것밖에 못 쓰나”, “왜 나를 취재 안 하냐” 등등의 말을 밥 먹듯 흔히 들었다. 처음엔 분했지만, 그만큼 언론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높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헌데, 최근 ‘기레기’로 대변되는 언론 비판은 혐오에 가까워 보인다. 기자와 독자의 신뢰관계는 회복의 기미가 안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또 촛불시위 현장에서, “방송 중계차를 빼라”, “(취재) 책상을 치우라”는 시민의 성난 함성이 들렸다. 격무 속에서 역할을 다 하는 기자들을 보면 이런 비난은 난데없는 칼질처럼 아프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다큐 영화 ‘공범자들’을 보면서 나부터 잊었던 과거가 되살아났다. 보수정권의 지난 9년은 실로 언론의 암흑기였다. 공영방송에서 탈법적인 해고와 징계가 횡행하는 것을 보면서, 정부 비판 기사를 써봤자 정책 반영은커녕 여론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정부를 보면서, 그리고 미리 조율한 질문이 아니면 입도 못 떼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보면서, 기자라는 직업에 얼마나 회의하고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는지!


민간 사기업인 신문사들의 문제는 좀 다를 것이다. 정권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는 대신 디지털 환경에서 망가져 갔다. 질 높은 뉴스가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하며 그 수준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하고 있다. 남의 특종을 베낀 기사, 선정적인 기사, 사실이 아니어도 독자 입맛에만 맞는 기사가 높은 조회수를 바탕으로 수익을 챙기는 구조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탐사기사를 생산할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언론 종사자들은 물론, 학계나 정부, 시민도 저널리즘의 추락을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언론은 급한 대로 팔리는 뉴스, 정권이 기대하는 뉴스를 만들어 냈고, 독자는 일상적으로 기자를 욕하며 기사 한 건 한 건에 잠시 흥분했을 뿐이다. 방송 독립을 요구하며 5년 만에 동시 파업에 돌입한 KBS와 MBC 기자들에 대해서도 “지난 정부에선 말 한마디 않고 월급 잘만 받더니 정권이 바뀌니까 시끄럽게 떠든다”는 비난이 나온다. 확장해 해석하자면 제 역할 못한 언론은 망해도 싸다는 인과응보론이다.


그러나, 제대로 보도 안 하는 기자들이 꼴보기 싫어 언론의 자유를 외면한 결과가 세월호 참사 당시 “전원 구조” 오보라면,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권력 비리라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대가로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로 귀결된 최순실 게이트 폭로가, 바로 언론의 성과라는 사실조차 외면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고별 기자회견에서 위트를 섞어 이야기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들이 쓴 모든 기사를 즐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이 관계의 특징이죠. 여러분들은 아첨꾼이 아니라 회의론자여야 합니다. 저한테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칭찬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에게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의무가 있는 분들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여기, 이 나라, 이 위대한 민주정치 실험에 있어 빠져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충분한 정보를 가진 시민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여러분을 필요로 하고, 우리 민주주의도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최승호 PD는, 대통령에게 공격적 질문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기자를 욕하기는 쉽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 민주주의가 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