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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2017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여성 리더와 헤어스타일

홍지영 SBS뉴미디어 에디터·본지 논설위원 "전문성에 원숙함 갖춘 백발 여성 리더들 많아지길"
여성 리더와 헤어스타일


홍지영(불문89-93) SBS뉴미디어 에디터·본지 논설위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외교부 장관 자리에 오른 강경화 장관이 주목받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주한 미대사와 통역 없이 자유자재로 이야기 하고, 주한 미군 부대를 방문해서 농담까지 영어로 구사하는 동영상을 보면 탄성이 나온다. 과거에 지하철역 영어 방송을 했다는 이색 에피소드까지 사람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여자 선배는 “친구들 중에 강 장관을 보면서 ‘염색을 하지 말아야겠다. 검게 염색한 머리보다 희끗희끗한 단발머리가 훨씬 더 카리스마 있고 멋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여성 리더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외모로 1차 면접을 치르게 되는 모양이다.

방송사 여기자로 25년째 살고 있는 나 역시 항상 헤어스타일이 고민이다. 원칙은 하나다. ‘이미지도 중요하고, 손질도 쉬워야 한다’는 것. 10여 년 전 파리 특파원으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원하는, 방송사 특파원 이미지에 맞는 머리로 커트를 해줄 수 있는 미용실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모양으로 서울에서 잘라서 나가면 파리에서 내가 스스로 혼자 손질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이사 준비와 온갖 서류 준비로 바빴던 와중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우스갯소리처럼 “가발을 하나 사서 가”라고 말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결국 나의 헤어스타일은 파리에서 여러 번 격동의 시기를 거치다가 돌아올 무렵, 일본인이 하는 미용실을 알게 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쟤 파리 가더니 파리지엔은커녕 더 촌스러워졌어”라는 말이 비수처럼 들려왔다. 파리지엔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방송 기자들은 야근을 하다가 지진이나 테러 등이 발생하면 갑자기 스튜디오 출연을 하게 된다. 그때도 문제는 헤어스타일. 남자 기자들은 와이셔츠에 넥타이만 매고 출연해도(하의는 카메라에 안 잡히니까) 그야말로 ‘노 프라블럼’이다. 하지만 여기자들은 아니다. 분장사가 있는 시간이면 괜찮지만 한밤중이나 휴일 저녁 같은 때 사고가 터지고, 출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난감하다. 웨이브가 좀 심한 상태로 출연하면 영락없이 “자다가 나왔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런 이미지라면 무슨 뉴스를 전한들 신뢰가 있을까? 남자들은 빗질 한 번 하면 되고 맨 얼굴로 나가면 오히려 “열심히 일하다 나온 모양”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말이다.

전문직 여성을 일단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외국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강경화 장관처럼 백발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백발의 커트머리에 화려한 스카프로 파리지엔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 이름난 멋쟁이다. 그런데 IMF 총재로 임명돼 미국으로 간 지 얼마 뒤 약간 긴 단발 머리로 푸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푸들이 됐다. 미국 가더니 패션 감각을 잃었다”는 혹평이 나왔다. 그러다가 단정한 커트 머리 스타일을 되찾으며 다시 카리스마를 찾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핀을 수십 개 꼽아야 완성할 수 있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는 지난해 말 얼마나 구설수에 올랐던가. 그 올림머리를 하느라 공을 들였던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재판을 맡았던 이정미 전 재판관이 너무 바빠 헤어롤을 감은 채 헌법재판소로 출근하는 ‘해프닝’은 또 한번 화제를 낳았다.

강 장관은 자신의 백발 머리에 대해 염색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지만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염색을 안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 리더까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이 참에 전문성에 원숙함까지 갖춘 백발의 여성 리더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