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67호 2017년 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이상규 칼럼 '검도로 맺은 한·일 인연'

서울대-도쿄대 검도교류전 참관기
검도로 맺은 한·일 인연
서울대-도쿄대 검도교류전 참관기



이상규(영문65-69) 모교 검도동우회 회장


매년 말 개최되는 서울대-도쿄대의 친선 검도 교환경기가 올해로 14년째.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때 일본 측에서 한국 내방을 꺼려 취소한 외에는 빠짐없이 열렸다. 양국에서 교대로 열리는 행사에 올해는 우리가 도쿄를 방문하는 차례다. 서울보다 5도 이상 기온이 높은 도쿄. 그러나 평지라서인지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학교 근처 호텔에 여장을 풀고 동대의 상징인 아까몽 정문을 지나 경내를 들어서니 130년 전통을 뽐내듯 아름드리 고목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그리 크지 않은 교내 레스토랑에서 뷔페식 환영리셉션이 열렸다. 도쿄대 측에서는 OB 10여 명과 YB 60여 명이 우리를 영접해 총 100명 이상이 참가하는 큰 행사였다. 일본 측이 대부분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인데 반해 우리 측은 동우회장인 나와 박 지도교수와 전 사범 등 서너 명을 뺀 대부분이 자유복인 것이 달랐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환영사 답례 축사에 이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튿날 아침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장인 칠덕당(七德堂)에서 합동 훈련이 거행됐다. 칠덕이란 무인이 지켜야 할 7가지 덕으로 금폭(禁暴), 즙병(?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豊財)를 이른다. 도장에서는 급수나 단도 주요하지만 선배를 상석에 모시는 것을 기본예의로 한다. 일 열로 나란히 서서 후배가 선배에게 인사를 올리고 연격 후 대련에 들어갔다. 각자가 그 간의 닦은 기량을 발휘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진지했다. 30여 대진 군이 한데 어울려 치고받는 모습은 전장의 백병전을 방불케 했다. 약 2시간 훈련은 쉼 없이 계속됐다. 훈련이 끝나자 구령에 따라 호구를 벗은 땀에 젖은 얼굴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겨울 추위가 무색했다.

동대 8단 고바야시 사범과 서울대 전사범의 강평이 시작되자 모두가 원을 그리며 둘러서서 귀를 기울였다. 어미사자를 둘러싼 새끼사자의 형상이라고나 할까. 고바야시 사범의 검도에 대한 설명이다. 

“검도라는 화분에 게이고(稽古)라는 씨를 뿌리고, 연습(練習)이라는 물을 주고, 노력(勞力)이라는 비료(肥料)를 주어, 만남(出會)이라는 햇볕을 쬐여, 인생(人生)이라는 꽃을 피우는 것이다.”

구령과 함께 묵상이 시작되자 엄습하는 침묵이 뜨거워진 몸과 마음을 식혀주었다. 이어 함께 대련한 선배를 찾아다니면서 무릎을 꿇고 정중히 인사를 올리면서 훈련은 막을 내렸다. 

지난 12월  도쿄대 검도도장 칠덕당에서 서울대와 도쿄대 검도부원들이 친선교류전을 가졌다.  


드디어 시합 날이 왔다. 칠덕당에 모인 학생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일본 선수들은 흰 도복, 한국 선수들은 청색도복이었다. 페어플레이를 당부하는 나와 몇 사람의 인사말에 이어 게임이 선언되었다. 남녀를 불분하고 대체로 한국 선수들이 체격이 컸다. 그러나 칼을 대고 시합에 들어가자 작은 일본 선수들은 엄청난 파워로 덤벼들었다. 겸손하고 순한 양의 모습은 무서운 사자로 변했다. 우리 팀은 연패를 거듭했다. 해를 거듭해도 좁혀지지 않은 기량에 다시 한 번 실력 차를 실감해야 했다. 기술적인 면도 있었으나 기본기, 기합, 임전의 자세에서 우리 선수들이 부족함을 볼 수가 있었다. 일본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아온 터라 예상한 것이었지만 다소 실망스러웠다. 어쨌든 친선경기다. 수고했다고 학생들을 다독거려 주고 내년을 다짐했다.

저녁에 간단한 송별연을 마치고 OB와 YB가 따로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종전에 비해 대접이 융숭하고 훨씬 성의가 있어 보였다. 노익장 사범이 다섯 명이나 나와 시내 관광에다 도쿄의 랜드마크인 ‘스카이 타워’를 구경시켜 주느라고 종일 고생을 해서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문득 개인적으로는 친절한 그들이 국익이 걸린 일에 마주치면 면을 바꿀 것이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긴장감을 풀 수가 없었다. 송별 식사는 스모 선수들이 자주 간다는 특별한 식당에 초대해 주었다. 낮에는 일본인이 세지만 밤에는 한국인이 세다는 농담이 술잔을 더해 갔다. 술이 좀 되었을 때 앞좌석에 앉은 아사히 신문 한국지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 이가 내게 물었다. 해방 후 어떻게 한국의 명문대학에서 검도를 다시 하게 됐냐는 것이었다. 검도가 정신운동과 육체운동을 다 아우르는 스포츠라서 좋아서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수긍이 잘 안 가는 표정이었다. 그들에게 검도는 스포츠가 아니고 일본의 정신문화이고 국기라는 것이었다. 2,000명이 참가한 8단 승단대회에서 0.5%인 10명이 합격하고 80대 할머니가 12년 만에 6단 승단에 성공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그들의 자부심을 뒷받침한다고나 할까.

검도가 스포츠 이상의 정신무장을 기반으로 한 무술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한국 측에서는 검도를 올림픽 종목으로 올리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본 측은 반대하고 있다. 유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된 이후 다른 나라에서 기술이 발전해 일본이 강자의 자리를 지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검도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 들린다. 전 세계 50개국에서 검도를 하고 있는데도…. 한국대표의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도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이 근래 우승의 근처에도 못 가고 한국의 태권도도 메달을 외국선수에 빼앗기는 것이 다반사다. 언젠가는 일본이 마음을 열고 검도의 국제화에 한 발 더 나갈 것을 희망하지만 성사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미중 패권다툼의 틈바구니에서 한일 간의 불편한 관계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본 교환 경기는 서로 기량을 연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라를 이끌 양국의 젊은 엘리트들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것 또한 큰 보람으로 여겨진다. 우리의 험난했던 지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얘기에 푹 빠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쓸데없는 노파심인가 싶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검도라는 작은 분야지만 양국 젊은이들의 친교가 언젠가 두 이웃나라 간의 불편한 관계를 푸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본다.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호구를 끌고 도장을 찾는 후배들의 의기가 마음 든든하다.